*우리교회의 아름다운 유산-2


      주의 거룩한 전에서 주 사랑을 생각하나이다.
      너희는 시온 두루 다니면서 망대에게 이르기를....
      자손에게 자손에게 전하라


 

-아카페회관 논의 중단 결의(19988월 제직회)

-채권 발행과 부채 상환(1988-2002)

 

2.아카페 회관 건축과 청산과정

(1)선교의 비젼

1)교단의 선교 중심교회

(선교위원회 조직-선교사 파송)1980년 이전 담임목사(박창환)가 미주지역의 선교지를 방문하고 귀국한 후 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전 교회적으로 해외 선교 사업에 집중하게 되었다. 1980년대는 소속교단에서 교세가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선교의 열정이 뜨거운 교회로 지목을 받았다. 1985년 일본국에 박 영기 선교사를, 1988년에는 류 영기 선교사를 파송하고 중국의 이헌봉, 연변 해양 전문대학의 김두환 선교사를 후원했다. 이어서 중국에 조윤태, 필리핀에 박세열, 김자선, 남후수, 정순성, 김재용 선교사, 그 외 지역에 박현수, 박진섭, 노록수 선교사 등을 후원하였으며, 기관으로 아시아 선교 연구원, 네팔의 성경학교 등을 도왔다.

(조기은퇴 시사-선교에 전념)담임자는 사상 교회 선교 위원회와 인근 교회와 협력하여 아가페 선교회를 조직했다. 은퇴 5년 전인 1990년에 후임자 정병재 목사를 청빙하고 자리가 잡히는 대로 조기 은퇴하고 셰계 선교에 주력할 뜻을 공회에 밝혔다.

(선교회관 구상)1987년 교육관 건립 기성회를 구성하여 교회와 인접하여 건축하려고 여러 차례 당회의 논의를 거쳤지만 결국 담임자(원로 목사)의 의도에 따라 예배당과 분리하여 우리교회가 후원하고 선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선교회관을 구상했다. 이미 1979년 총회장과 1980-1984년까지 총회유지재단 및 고려학원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복음병원의 확장과 고신대학교의 영도 캠퍼스 건축과 이전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세계선교의 지평이 열려있었으며 선교회관 건축에 대해서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2)선교회관 건축

(경과 보고)교육관 건축 명목으로 1989675백만원으로 신축 예정 부지를 매입(295, 덕포동 404-8번지)하였으며 1991127일 선교센타 건립 위원으로 장판삼 장로, 김기석 장로, 권영동 장로가 선임되었다. 1992830일 교육관 건축 택지 확보를 위한 헌금을 작정하고 1993년 기공 예배(연건평 1.896.36)를 드렸으며 1995710일 아가페 선교회관 준공(지하 2, 지상 10, 연건평 1,900) 예배를 드렸다.

 

(2)곤란과 교회의 위기

1)재정적 압박

(주상복합 건물)교회가 순수하게 교인들의 헌금으로 건축비를 마련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선교회관 건물에 기독교 백화점이나 병원을 유치하여 일정한 수익을 얻어 건축비에 충당하고 선교 기금으로 사용하려는 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공청회와 당회의 논의가 거듭되었으나 닥쳐올 산적한 애로들(건축비, 분양, 운영)에 두려움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건축 위원회는 주상복합 건물을 지어 이를 분양하고 교회의 부속 건물에서 영업을 하던 사상 중앙신협이 회관 건물의 일정부분을 사옥으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건축의 활로가 열렸다. 교인들도 힘써 건축헌금을 작정하였고 경상비를 절약하여 건축비로 전용하였다.

(용웅건설)1993년에 드디어 선교 회관과 사상 중앙신협의 기공식을 가졌다. 공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지반이 낙동강 하구의 뻘층이어서 기초를 굴착하고 지반을 다지는데 시공업체가 곤란을 겪으면서 공사비가 추가되었다. 아가페 회관을 용웅건설과 계약할 때 총 285백만원이었으나 계약금보다 33천이 초과되었다.

(실무자의 애로 토로)다용도 시설을 분양하여 공사비로 충당하려던 계획이 여의치 않음으로 교회가 재정적인 압박과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아가페는 땅밖에 없었다. 처음에 돈 없이 건물이 지어졌다. 빚이 많아서 걱정이다. 건물을 다 지어도 문제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건물 임대와 보증금 수입이 미진하여 현재 교회 부채가 865백여만원 이다.‘

2)최악의 상황

(담임자 교채 시기) 1995년 선교회관 준공 예배를 드리던 그해 신임 목사(박흥석)가 담임자로 부임하였다. 1987년부터 선교회관을 구상하고 강력하게 건축을 지휘하던 박창환 목사가 은퇴하고 공사 후 문제가 산재한 상태에서 박흥석 목사가 부임했다.

담임자(박창환)가 선교사역을 위하여 조기 은퇴를 표명하고 1990년에 후임자로 부임한 정병재 목(1990-1993) 담임자의 선교 사역과 의중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사임하고 후임 지정을 은퇴 시까지 미루었기 때문에 신임자는 전임자의 은퇴시기에 맞물려 부임하였다. 따라서 그간 우리교회의 선교사역과 아카페 회관건축은 물론이고 교인들의 정서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할 시간이 없었다.

(국가적 재정위기)1997123일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야하는 국가 부도 사태와 맞물렸다.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는 면했지만 국내의 재정적 여건은 최악이 되었다.

(교인들의 동요)형편이 어려워지고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서 아카페 선교회관 공사와 관련된 일체 의사결정 과정과 공사 내역에 대해서 제직원들의 불만이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책임을 맡은 위원들이 최선을 다해 답변하고 설명하려했지만 공사발주와 시행과정에 대한 세세한 업무 일지와 회계기록이 미비했기 때문에 근거 자료와 정확한 정산을 요구하는 제직회의 빗발치는 질의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3)문제 인식과 쟁론과정

1)선교회 운영의 폐쇄성 지적

(문제의 발단)박흥석 목사 부임 첫해 6월 제직회에서 선교부의 회계보고(전년도 이월금 49,368,777, 수입 94,703,332, 지출 135,690,800, 잔액 8,381,309)가 끝나자 회원 중에서 연도별 선교비 정산 내역을 알려달라는 질의가 있었다. 몇 해 전 당회원 중에서 담임자의 선교회 운영의 독단성에 대해서 에바다라는 비판적 성향을 지닌 잡지에 기고하여 한동안 이 문제로 시끄러웠고 해당 당회원은 시벌을 받았다. 그러나 담임자가 물러나고 아카페 회관 건축에 관한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전임자의 선교회 운영 방식과 과도한 건축으로 인한 채무 변제에 대해서 제직들의 불만이 공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감사 자료의 불충분 지적

(지속되는 격론)그해 11월부터 아카페 문제가 제직회의 논의에 중심을 자리 잡았으며 모일 때마다 논쟁이 비등했다. 제직회가 감사 위원을 선정하고 공사 전반에 대한 회계 감사를 시도했지만 공사일지도 부실하고 지출에 대한 증빙 자료도 불충분하였기 때문에 매서운 질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는 여태까지 교회 공사의 관행이 선임한 위원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공사전반에 대한 업무와 회계에 대한 철저한 증빙서류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대체로 교회 공사가 소규모였고 이번처럼 공사 후에 재정적 압박을 당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회계 감사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건축위원들을 불신하는 것으로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2007년 예배당 리모델링 공사 시에는 교회가 지정하는 감독관을 현장에 파견하여 상근하게하고 사무장이 공사관계 서류 일체를 일일 점검하여 부문별로 분류하여 철하였다.

감사 자료의 불충분을 탓하여 격론을 벌인들 별잔 소득이 없었다. 이에 다수의 제직원들이 아카페 건축을 결의하고 시행을 주도한 당회의 공식적인 사과를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당회원의 공식 사과)19972월에 은퇴한 박창환 목사를 비롯하여 전 당회원이 공회에 나와서 사과하므로 사태의 수습을 꾀했으나 불씨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아카페 회관의 문제에 신협 부도 사태가 상승 작용을 하여 당회원들 간에도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당회도 오랫동안 평화롭지 못했다. 제직회를 모일 때마다 자제되지 못하는 언사와 상호 비방이 회의를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교회 전체의 영적 분위기가 가라앉게 되었다.

 

(4)사태해결의 지혜 모으기

1)논쟁 중단을 결의

(교세의 감소)교회 재정은 피폐하여지고 교세는 줄어들었다. 1996년 연간 총 수입이 1,142,266,341원이었는데 이듬해인 97년에 1,002,717,918원으로 줄더니 1999년에 이르러 73,482,407원에 이르렀다. 물론 국가적 부도 사태에 핍박해진 교인들의 생활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교세도 기울어져 부임 당시에 12000명을 상회하였는데 점차 줄어들어 800명 선으로 감소했다.

(위기의식의 공유)1998년 담임자는 연초에 화합과 전진이라는 표어를 교회 전면에 내걸고 전 교인이 하나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다. 논쟁이 거듭되어도 결론은 제자리에 맴돌았다.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교회는 더욱 위축되었다. 대부분의 교인들도 이상 더 소모적일 수밖에 없는 논쟁이 중단되기를 원했다. 비록 감사위원들이 요구하는 회계 서류나 증빙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그간 책무를 맡아 건축을 진행해온 위원들의 신앙양심과 노고를 인정하는 편이 교회에 덕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논의의 중단을 결의했다. 하지만 심상치 않게 불법 유인물이 나돌기도 하였으며 결손 부분에 대한 변상을 하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마침내 8월 제직회에서 아카페 문제를 재론하지 않기로 재 결의했으며 그 후로부터 이상 더 공식적인 모임에서 아카페 문제에 대한 논쟁이 사라졌다. 이제는 합심하여 채무를 변제하는 일에 지혜를 모았다.

3)채권 발행과 부채 상환(1988-2002)

(전 교인의 적극 참여)당회는 정석영 장로의 발의로 채무변재를 위해서 교인들에게 채권을 발행하기로 결의하고 교인들의 동의를 구했다. 워낙 거세게 몰아닥친 논쟁의 열기 때문에 채권발행이 가능할까도 염려하였지만 대부분 교인들은 당회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국가부도 시에 금 모으기 운동처럼 실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직분별로 차등(당회원 500, 장립집사 200, 서리집사 100)하게 정하고. 무이자로 상환 기간을 5년으로 정하였다. 교인들은 각자에게 금액에 대해서 자신이 이자를 부담하면서 교회에 무이자로 빌려 주기로 한 셈이었다. 그리고 교회가 경상비를 절약하여 교인들에게 빌린 채무를 갚아 나갈 때는 사정이 급한 분들을 우선하지만 가급적 중직자의 상환 순서를 제일 뒤로 미루었다. 채권 발행이 시작되자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우리교회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역사적 교훈)비록 실무자의 부족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여 치열한 논쟁을 종결하기로 공회가 공식적으로 결의하고 채무를 변재하기 위해서 채권을 발행하기로 한 결정을 교인들이 수용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국가 금융 위기 시에 금 모으기 운동이나 일제의 한일병합이후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실시한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소중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교회의 안정과 회복)19988월에 시작된 채권 발매는 2002년도에 이르러 상환이 종결되었다. 2001(수입 1,002,303,193)2002(수입 1,088,908,901)에 이르러 전년도(1999년 수입 873,482,407) 비하여 괄목할 정도로 교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2003(수입 1,207,027,449)에 들어서면서 교회가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부채변재 조치와 병행하여 아카페 회관을 매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 모으기

1997년 대한민국이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하여 외환 부채가 약 304억 달러에 이르렀다. 전국 누계 약 351만 명이 참여한 이 운동으로 약 227톤의 금이 모였다. 그것은 약 213천달러 어치의 금이었다. 국가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희생정신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국채보상 운동

1907년경 경상도 동래, 대구등지에서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국채를 갚기 위해 금주 금연 운동이 일어나고 기생들은 머리채를 잘라 팔아 이 운동에 동참했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이 대한제국에게 반강제적인 차관을 제공하였으나, 대한제국은 차관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사실상 일본이 대한제국에게 제공한 차관은 일본이 한국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고 1907(대한제국 융희 원년)에 이르러 1300만원에 달했다. 일본은 대한제국에게 차관을 제공하여 한국의 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의 일환으로 1905(광무 9)에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타를 조선에 보내,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하여 대한제국의 은행들은 일본 은행에 종속되었고 차츰 대한제국의 경제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차관 제공도 이와 같은 의도에서 시작되었고 결국 1300만원이라는 빚을 진 한국은 이를 갚을 능력이 없었다.

 

5)지분 매각과 정산

(정산 보고)200422일 이성빈 장로의 은퇴로 장승현 장로를 위원으로 충원하였으며 629일 아가페 회관 신협 지분 인수사항 중간보고 하였다. 20052월 제직 회의록에 기록된 아가페회관 매각 정산보고(이성경 장로)에 의하면 교회지분(50%) 매각 금액 1,060,000,000원으로 헌금수입 : 468,238,888(예상수입 : 370,500,000), 총수입계 838,738,888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서 아카폐 회관에 관한 모든 사안은 정리되었다.

(정산 보고)2005, 이성경 장로가 제직회 시에 정산 내역을 보고하다.

교회지분(50%) 매각 금액 1,060,000,000

헌금수입 : 468,238,888(예상수입 : 370,500,000)

총수입계 : 838,73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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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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