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를 죽이자?”

목회와 교육을 분리하는 이중구조를 극복하라

“문명은 교육과 재앙간의 경주이다(Civilization is a race between education and catastrophe.)” 영국의 저술가 웰스(H. G. Wells)가 한 말이다. 주요 종교 개혁자들은 중세 기간 동안의 성경 지식의 결여를 “재앙”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은 교육을 지지했고 이것은 종교개혁의 위대한 표지들 중 하나가 되었다. 종교개혁전통에서 칼빈주의자들은 위대한 대성당의 지지자들이 아니었다.오히려 그들은 학교, 대학, 종합대학의 설립자들이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종교개혁과 교육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목회는 교육이었고 교육이 곧 목회였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제65차 정기논문발표회가 “교육을 통한 한국교회의 회복”이라는 주제로 서울신학대학교 토마스 홀에서 지난 4월 25일에 열렸다. 주제 강연자로 나선 프랭크 제임스(Frank James) 교수(Biblical theological seminary)는 위와 같이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칼빈의 개인 역사를 살피면서 칼빈은 그 시대의 위대한 인문주의자들로부터 심도 있게 교육받은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칼빈은 교육받은 자로서 단순히 지적인 사람에 머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동하는 자였고 성령의 사람이었다. 제임스 교수는 칼빈이 설립한 제네바 대학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제임스 교수로 부터 강의의 주요 내용을 들어보자.

“교육을 통한 한국교회의 회복” /프랭크 제임

칼빈과 그의 동료 종교개혁자들은 초기부터 목회자 후보생들을 준비시키는 일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1541년의 교회법령(the Ecclesiastical Ordinances)은 목회자 후보생들이 ①교리에 있어서 건전하고, ②고양된 도덕적 인품을 보이며, ③복음을 교훈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능력을 소유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를 따라 칼빈은 말씀 목회를 위해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제네바 대학 교육의 첫 번째 목적으로 삼았다. 칼빈에게 있어서 또하나 중요한 교육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라와 사회를 위해 기독교 정치가들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1541년 교회법령은 제네바 대학의 목적을 “목회와 시 정부 양자를 위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네바 대학의 실제적인 목적은 개인, 교회 및 사회의 갱신인 문화적 갱신이었다. 칼빈은 문화 전사 군단을 훈련시킬 기회를 붙잡았고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유럽의 영적 갱신이었다. 그 결과 존 녹스(John Knox)는 칼빈의 제네바 대학을 “그리스도의 가장 완벽한 학교(the most perfect school of Christ)”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칼빈의 교육철학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은 바로 교육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육의 목적은 그 자체가 아니라 교회와 국가 양자 모두의 갱신에 있었다.따라서 칼빈의 교육은 행동주의적 접근(activist approach)를 취했다. 칼빈의 교육은 호전적인 선교사들을 양산해 냈고 특별히 프랑스에서 현저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7년 동안 2,100개의 교회를 세웠고, 그 국가안에 칼빈주의자들의 도시를 설립했다. 프랑스 위그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칼빈의 행동주의적 교육 비전에 빚지고 있다. 교육에 대한 칼빈주의자들의 접근은 역동적이었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은 그 종착점이 아니었다.

칼빈주의는 프레드릭(Frederick) 3세 치하에 독일의 들어갔고 이일이 1563년 독일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의 형성을 이끌어 냈다. 칼빈주의는 마틴 부서(Martin Bucer), 피터 마티르(Peter Martyr) 및 얀 라스키(Jan Laski)를 통해 영국에 들어갔고, 존 녹스를 통해 스코틀랜드로 그리고 청교들에게 의해 미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칼빈주의 장로교 선교사들과 연관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통해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칼빈의 교육은 역동적 교육이었다. 칼빈의 제네바 대학은 타인의 필요에 대한 복음의 책임은 안중에도 없는 그런 신학적 상아탑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무지와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한 학교 그 이상의 존재였다. 다시 말해 칼빈의 제네바 대학은 목회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중세 기간 동안의 재앙을 성경 지식의 결여에서 나온 것으로 여겼기에, 칼빈에게 있어서 진정한 믿음은 지적 믿음이어야 했다. 그런 지적 믿음은 심도 있는 교육을 요구한다. 칼빈주의의 존재 자체는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칼빈에게 있어서 교육은 단지 사상들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칼빈의 교육은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칼빈의 마음속에 교육은 문화와 영의 갱신을 위한 수단이었다.

제임스 교수의 강의는 이렇게 마무리 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칼빈에게 있어서 교육은 목회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칼빈의 목회와 교육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교육이 목회였고 목회가 곧 교육이었다. 강의 후 복음주의신학회 회장 권혁승 교수(서울신대)는 칼빈의 제네바 대학 교육의 내용을 배우고 나니 목회와 기독교교육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논평했다.

강의는 수강자를 동의하게 했다. 교육과 목회의 이원론적인 이중구조가 한국교회의 교육을 망쳐놓은 것은 아닌가? 교육전문가들이 진단하는 교회교육의 첫 번째 이유는 이구동성으로 담임목회자들의 교육에 대한 무관심 즉 교육목회철의 부재이다. 반대로 담임목사들은 교육은 나의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교육의 전문가들은 교육은 목회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교육과 목회의 엇박자가 계속되는 한 한국교회의 교육 문제는 지속 될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아신대 전병철 교수의 통찰력 있는 지적이 가슴을 울렸다. “어린이를 성도로 받아주지 않고 교회로부터 분리해서 교육차원에서만 다루면 그들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가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을 교회로 받아 주지 않고 그저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그 교회 공동체의 예배를 모른다. 그저 그들은 교육의 대상으로 따로 모임을 가질 뿐이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그들은 교회의 지체가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실제적으로 유치부부터 유초등부 중고등 최소 12년을 거치면서 그들은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의 예배문화를 접해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연령별 발달과정별 교과과정에 맞추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것들만 먹어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어른들과 예배를 드리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된장찌개와 김치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김치와 된짱 찌개로 식사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입에 맞을 리가 없다.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부모와 함께 식탁에 앉아서 된장국을 먹고 물로 씻은 김치라도 먹어본 어린이는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된장찌개에 김치를 찾는다. 심지어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다.

강의 후 미국에서 참가한 한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가기를 원했고 어른 예배에 함께 참여했기 때문에 아이들 신앙교육에 특별히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 영의 양식을 먹어본 아이들은 그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빠 오늘 시원한 설렁탕 한 그릇 사 주세요.”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아빠와 함께 먹곤 했던 설렁탕의 맛을 아이는 기억하고 있다. 아니 사랑하고 있다.

목회와 교육이 분리됨으로 생긴 교회의 모순된 이중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전병철 교수(아신대)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이미 기독교 교육이라는 용어 자체가 거의 사라져 버리는 추세라고 한다. 기자가 미국의 주요 신학대학교의 대학원 과정들을 검색해 보니 사실이었다. 교회교육(Church education)혹은 기독교 교육(Christian education)이라는 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앞서가는 신학대학들은 청년사역(Youth ministry), 어린이 가정 사역(Children and family ministries)과 같은 용어를 쓰고 있었다. 미국만 그런가 하여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남아공의 스텔렌보쉬 대학교도 살펴보았다. 석박사 전공과정으로 청년사역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Youth work)과가 있었다. 어린이 교육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어린이 사역은 목회학 부분의 가정사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었다.

더 중요한 점은 앞서가는 대학들은 용어만 다른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달랐다. 교육관련 학과들이 다 신학과 내의 실천신학부서에 속해서 신학과 목회 그리고 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회와 교육의 이중구조 아니라 통합구조로 이미 바뀐 것이다. 이는 어린이들은 부모와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청년들을 교회의 핵심 지체로 받아들여 목회의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 일 것이다.

제임스 교수에 이어 한국교회 교육의 문제에 대한 방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함영주 교수는 발표를 시작하면서 최근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 제목을 소개했다 - 주일학교를 죽이자(그것이 교회를 죽이기 전에)/ Let's Kill Sunday School (Before it kills the church). 그의 방대한 연구 결과가 보여주고 있는 지향점도 목회와 교육의 통합이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목회와 교육을 하나로 실천한 칼빈 선생에게 속히 배워야만 할 때이다. 아니 교회와 국가 모두의 갱신을 바라본 칼빈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목회와 교육의 이중구조를 속히 극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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