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정신을 중심으로

한국의 개신교(改新敎 Protestant)는 역사적으로 가톨릭교(舊敎 Roman Catholic)의 사제주의를 비판하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지금 현재 가톨릭교에 버금가는 사제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이는 개신교를 통해 진실한 복음이 전파되기를 갈망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하여 루터의 종교개혁정신을 기준으로 한국의 개신교 현황과 비교 대조해 봄으로써 한국 개신교의 개혁 방향에 큰 교훈을 얻을 것을 기대하고 한국교회연구원(원장 전병금 목사)이 「한국교회 마르틴 루터에게 길을 묻다」 제2회 한국교회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라는 주제로 종교개혁500주년기념심포지엄을 지난 9월 17일(목) 오후 5시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어 “한국교회,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를 백종국 교수(경상대, 정치외교학)가 발제를 하고 사례로 “민주적 도시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하여 정성규 목사(부천예인교회)가, “민주적 목사, 장로 임기제와 그 장단점”을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가 각각 발표를 하였다.

 

한국교회,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백종국 교수

백종국 교수는 먼저 이 논제를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을 중심으로 한국 개신교의 민주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먼저 한국 개신교의 개념적 혼란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개신교에서 목격되는 최대의 문제는 올바른 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면서 그 이유는 수입된 신학과 일제, 분단, 독재라는 극단적 상태를 배경으로 형성되었다고 진단한다.

 

어떤 것이 개념적 혼란인가?

 

1) 만인제사장론(priesthood of all believers) ⇔ 사제주의/교권주의(clericalism): 만인제사장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며, 그들 중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구별된 성직자임을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별된 성직자들이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를 매개한다는 사제주의(sacerdotalism)나 안수를 받은 목사들이 교회를 다스려야한다는 교권주의(clericalism)는 이러한 점에서 종교개혁의 정신과 배치되는 사상이다.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정신을 표방하는 한국 개신교가 이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운 일이다.

 

2) 민주주의(democracy) ⇔ 독재주의(dictatorship): 한국 개신교 내에서 가장 큰 혼란의 대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인간에 의한 지배”로 규정하고 이에 대비되는 “신에 의한 지배”를 규정하기 위해 “신본주의(神本主義)”나 “신정주의(神政主義)” 심지어 “신주주의(神主主義)”와 같은 게토화된 용어를 마음대로 생산해내기도 한다. 가톨릭은 교황에 의한 독재주의를 선택한 반면에 개신교는 회중에 의한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개신교 내에서 신본주의나 신정주의나 신주주의와 같은 게토화된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신앙에 있어서 무지하거나 성도들을 속이는 사람들이다.

 

한국 개신교의 사제주의적 혼란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사제주의적 경향은 담임목사의 독재이다. 대다수의 한국 개신교회들은 담임목사를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총회 헌법들은 위임목사, 임시목사, 전도목사, 교육목사 등 10여종 이상의 목사직을 인정하고 있으나 오로지 담임목사 즉 위임목사에게만 교회 운영의 모든 권한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담임목사는 공동의회의장, 당회장, 제직회의장, 주일학교장을 겸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별 교회에서 운영하는 거의 모든 기관들의 장을 겸임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담임목사의 독재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 개신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각종 권한을 개발해왔다. 당회장권, 강단권, 설교권, 목양권, 축도권, 세례권, 안수권 등이 그러한 사례로서 교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신앙적 행위를 목사들이 배타적으로 보유하는 권리로 선포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가톨릭적인 사제주의를 개신교적인 신앙원칙으로 포장한다는 사실이다.

 

개신교의 민주적 통치 원칙은 종교개혁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루터의 표현에 따르면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 한 가지 뿐이다. 곧 로마의 횡포가 평신도들에게 한 가지 요소를 금할 때에 옳게 행하는 것처럼 그 횡포를 아무도 정당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Luther 1993, 161). 칼빈도 이와 같은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공의회, 목회자, 주교, 교회라는 어떤 명목도 (이것은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고 또 거짓으로 가장할 수도 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영이 과연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시험할 수 있도록 이런 증거를 통하여 배우는 것을 막지 못한다.”(Calvin 1988, 360).

 

한국 개신교의 윤리적 혼란

 

한국 개신교에서 사제주의적 경향이 강해지고 목사의 독재권이 강화될수록 한국 개신교 내의 윤리적 혼란도 커지고 있다. 액튼 경이 말한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반성은 바로 가톨릭교회의 독재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에도 재정적 부패, 성윤리의 타락, 목회세습 등이 대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개신교 내 다수 교회의 재정은 사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적 원칙조차 크게 훼손하고 있다. 모든 치리회의 장을 담임목사가 맡고 있고 거부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담임목사의 의도에 따르지 않는 재정의 출납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으로 부터의 계시” 혹은 “목회 철학”을 빙자하여 교회가 감당하기 힘든 지출을 결정하곤 한다. 재정의 규모가 크든 작든 담임목사에 대한 지출은 최대한 보장되고 그 항목도 분산되어 있어서 쉽게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

 

한국 개신교에서 발생하는 성추문은 이제 복음의 문을 가로막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안티기독교를 표방하는 인터넷사이트에는 성추행으로 고발당하거나 처벌받은 목사나 전도사들의 기사들로 긴 목록을 이루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민주화

 

1) 한국 개신교 교회정치의 개혁주의적 이해: 종교개혁정신에 바탕을 둔 교회정치의 핵심은 자유와 민주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제주의적 독재로 부터의 해방이다. 루터가 공격한 것은 교회도 아니고 교황도 아니며 복음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복음은 모든 이들에게 찬란한 기쁨과 활력과 희망을 주는 원천이었고 교회는 그러한 복음의 전달 통로이었으며 교황은 전통과 교회법에 의해 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할 만 했다. 루터가 공격한 것은 탐욕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사제들의 독재체제였다.

 

2) 개혁주의 교회정치원리의 정립: 종교개혁의 전통을 계승하는 개혁주의 교회정치원리의 정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아쉽게도 수입학문적 성격이 강한 한국의 개신교 신학은 이 점에 있어서 후진적일 뿐 아니라 도리어 퇴행적이다. 사제주의적 독재를 즐기는 목사들의 횡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해 주고 그들의 약탈물 분배에 참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3) 민주적 정관 = 개혁주의적 신앙을 담는 그릇: 독재 체제가 가톨릭의 사제주의를 담기에 적합한 그릇이라면 민주 체제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담기에 알맞은 그릇이다. 서로 다른 정신은 각기 다른 그릇에 담는 것이 좋다. 가톨릭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든지 개신교에서 독재주의를 추구하면 반드시 심한 갈등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개신교의 정관(定款)이나 헌법(憲法)은 이러한 그릇을 구성하는 핵심적 수단이다.

독일엔 한 명의 루터가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에는 수 백 명의 루터들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는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민주적 체제가 복음을 담기에 가장 합당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모든 개신교 선구자들이 강조하는 개혁주의 정치의 핵심이다. 개신교에 속한 그리스도인임에도 교회가 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지하거나 속이는 자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이와 반대되는 체제를 택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주의이고 독재주의는 개신교의 정치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정치체제의 세 가지 전통적 분류 즉 감독제와 장로제와 회중제의 분류도 지금은 별 의미가 없다. 전통적으로는 가톨릭의 사제주의적 독재를 감독제로, 장로제를 대의민주주의로, 회중제를 직접민주주의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사이의 구분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참여민주주의 혹은 심의민주주의의 개념들이 자주 거론되고 있는 데, 이는 각 공동체의 형편에 따라 민주적 체제를 구현하는 방법이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한국의 상황은 5백 년 전 독일의 상황 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5백 년 전 독일에는 한 명의 루터가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에는 수 백 명의 루터들이 있다. 이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를 기대하며 다양한 헌신으로 복음적 분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에는 교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애틋한 믿음도 엿보이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 5백주년이라는 역사적 계기는 이러한 헌신적 그리스도인들을 폭넓게 깨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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