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설교는 한 달포 전 미국 뉴욕에 있는 퀸즈 한인교회에서 손희영 목사가 전한 집회설교 내용입니다.

 

본문 / 엡 2:2-3

제목 /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손희영 목사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2015/09/25 (금) 14:45 ㆍ추천: 13 퀸즈 한인교회(이규섭 목사)는 9월 18일부터 3일간 손희영 목사를 강사로 추계 말씀성회를 열었다. 손희영 목사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연세대 의대를 나와 동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에 와 텍사스 암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있다가 풀러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플로리다 소재 게인스빌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18년 동안 사역하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게인스빌 한인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2011년 용인에서 행복을 나누는 하나교회를 개척했다.

 

손희영 목사는 신앙의 본질을 다루는 설교를 많이 한다. 이번 성회의 주제도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이다. 손 목사는 주일 에베소서 2:3-5를 본문으로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어떻게 살면 안 된다는 내용인가? 설교의 흐름은 전체적으로 자녀교육에 대한 내용같이 보인다. '엄마는 자녀들이 제일 먼저 만나는 거짓 선지자'라는 내용도 그렇고, 부모의 욕심으로 세상적인 가치로 자녀를 키우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과 심지어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는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인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믿지 않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에 대한 답도 들어가 있다. 손희영 목사는 한국의 교회는 교회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물든 세계관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기독교를 믿고 있는가? 다음은 설교내용이다.


 

본문은 무거운 말씀이다. 두려운 마음도 들고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영혼 속에 있는 어둠을 몰아내기위해 참 빛을 비추어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신문기사를 보고 웃은 적이 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가 아들이 근무하는 휴전선 군부대 인근에 방을 얻어 놓고 부대에 매일 전화해서 아들을 챙긴다는 것. 외국 여행 중에서 국제전화를 걸어 딸의 에세이 숙제를 대신해 주는 부모, 강의실에 감기 걸린 자녀대신 나와 출석 체크하는 부모도 있다. 이런 일들을 우스개처럼 들리지만 대한민국 이시대의 부모들이 얼마나 희한한 일을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자녀들을 길러 일류회사 직원, 의사나 변호사로 기르는 것을 목표로 유아원 때부터 자녀들을 닦달한다. 2014년 대한민국 사교육비가 33조원을 넘었다.

 

이런 이야기를 강단에서 하면 항상 듣는 반응은 자식을 잘 기르려 하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일생에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하나님께서 아이를 우주 안에서 책임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시는 것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문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보니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모든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흉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지 모른다. 국민들은 그런 나라에 대해 절망하고, 최근 갤럽조사에 의하면 20-30대 젊은이 중 대한민국을 자랑스럽지 못하게 생각하는 젊은이가 78%를 넘었다. 문제 있는 정치인들, 탐욕적인 경제인들, 편협하고 피상적인 교육자들을 보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고 사회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는데 사실은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본문을 보면 2000년 전에 바울이 에베소 교인에게 한 이야기인데 오늘날 현상과 일치한다.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는 사탄이고, 불순종의 아들이라는 것은 불순종을 삶의 특징으로 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의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해 왔다. 이 시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그렇게 해 왔다. 태초에 인간이 하나님을 등진이후에 모든 시대마다 그래 왔다. 문제는 우리나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런 일들을 그냥 간과한다는 것이다. 어떤 누구도 자신이 공중의 권세를 따르고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예수를 믿기 전에 안 좋게 살기는 했지만 설마 사탄을 따라 살았겠는가 생각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그랬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상풍조를 따랐다는데 세상풍조가 무엇인가.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물질주의와 성공주의 피터 버그라는 사회학자는 '타당성 구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타당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회 구성원들이 그 사회가 통째로 무너지기 않기 위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넘어가는 사회의 질서와 가치체계를 타당성 구조라고 한다. 이런 타당성 구조가 현대사회에서는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이다. 물질주의는 물질 즉 돈이나 학벌이나 권력 같은 재화를 많이 획득하는 것이 인생의 행복을 가져온다는 생각이고, 성공주의는 물질을 많이 획득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사상이다. 이 두 가지가 현대사회의 타당성 구조이다. 아무도 그것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누구나 그렇게 되기 원하고 그렇게 되지못한 사람은 너무 살기 힘든 시대이다. 물질주의와 성공주의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런 설교를 하는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정도이다. 우리들이 지금 하는 자녀교육 방법이나 내가 자녀에게 품고 있는 소원이 뭐가 틀리냐고 하는 것은 참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왜냐하면 너무 익숙하여, 물고기에게 물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설교자가 혼자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육신 또는 육체란 무엇인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육체'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육체로 번역된 같은 단어를 로마서 7장에서는 '육신'이라고 번역했다. ‘육체’ 혹은 ‘육신’이라고 하면 휴먼 바디로 이해하기 쉬운데, 신약에서 사람의 몸으로 표현된 곳은 적고 사용하는 대부분의 육신은 나쁜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로서의 제한성과 연약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에 의해 성경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는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없이 살도록 잘 훈련된 인간의 인격과 기능들을 '육신'이라고 부른다.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께 절대 의존적인 존재로 지어졌으며, 그렇기에 하나님이 끝없이 생명의 자원을 부으셔야 한다. 그런 하나님을 등지고 결별한 것이 인간의 타락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의 자원들을 늘 공급받아야 하는데 타락으로 공급이 끊겼다는 것은 뱃속의 태아가 탯줄이 끓긴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되니 인간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 돈과 권력과 학식 같은 자원들을 악착같이 내게로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기중심성과 이기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인격이 단련되는 것이다. 운동을 많이 하면 근육이 붙듯이 인간이 하나님 없이 오랫동안 살다보니 그렇게 살도록 훈련된 것이다. 그것을 육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속에는 육신의 생각과 육신의 감정과 육신의 결정과 여러 가지가 육신적으로 되어 있다.

 

육신의 습관이 왜 변하기 힘든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데 문제는 내 몸속에 깊이 배어있는 인격의 습관들(사고, 선택, 느낌, 의지 등)과 인격의 기능들은 전부 다 하나님을 등진 상태로 하나님 없이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루아침에 참 기적적으로 다 변화되면 얼마나 좋을지 몰라도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무리 성령의 불을 받고 뒤집어져도 해도 잘 변하지 않고 오랜 세월이 걸린다. 내 안에서 나를 다스리려고 하는 성령님의 뜻이 있고 그 뜻을 내가 동의는 하지만 내 안에 남아있는 습관이 있다. 그것이 자꾸 거스르는 것이다.

 

그것을 로마서강의에서 루이스 목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남북전쟁 후 흑인 노예가 해방되었다. 노예들은 법적으로 해방되어 자유인이다. 그런데 길을 가다 이전의 농장 주인을 만나니 굽실굽실 노예행세를 한다. 노예가 아닌데도 그렇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등진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인데 불행히도 우리 속에 남아있는 육신의 습관들은 옛사람의 형태를 하는 것이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육신의 습관을 정죄하지 않으신다. 습관자체를 보면 맹렬하게 하나님을 대항하는 반역적이고 하나님과 원수 되는 행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하고 있기에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

 

육신의 습관대로 행하면 일어나는 문제

 

그러나 육신의 습관대로 행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신분적으로는 내가 예수님 안에 분명히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분명한데 실제로 살아가는 데는 생명의 잔을 마시지 않고 자꾸 사망의 잔을 마시는 것과 같은 그런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순되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온 모든 시대 속에서, 지금은 이세상의 타당성 구조가 물질주의와 성공주의가 되고 그래서 내 삶의 유익을 취하는 내 몸의 안전과 행복과 물질적인 부유함 같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가 누구를 빼앗거나 사기 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하나만 들어보아도 자기 한 목숨만 살기위해 선장이 도망갔으며, 해경들은 자신들의 위험 때문에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으로 재난구조 책을 잘 가동하지 못했으며, 국가 컨트롤 타워도 제대로 작동을 안했다. 각각 하나를 보면 큰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이 보인다. 소극적이고 게으르고 자기 몸보신이다. 내 안전을 우선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선박회사는 좀 더 사람을 많이 실으려고 낡은 배에다 객실을 증축했다. 그리고 배의 바닥에 물을 넣어서 무게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짐을 더 실기위해서 물을 뺐다. 안 그래도 기름 값도 비싸고 경기도 안 좋은데 이렇게 수지타산을 맞추어서 회사가 이익이 생겨야지 안 망하고 직원들도 일자리가 생기고 당연하다고 지내왔을 것이다. 그런데 별것 아닌 것 같은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의 작은 사슬들이 계속 연결되어 너무나 끔찍한 참사를 빚어냈다.

 

정말 하나님 없이 살아오도록 훈련된 고질적인 육신적인 습관이 나타난 모습이다. 그렇게 사건이 터졌을 때 온 국민들이 울고불고 장탄식을 하고 정부와 사회를 비난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그렇게 길러낸 것이 우리사회이다. 우리사회가 그런 타당성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가운데 자라난 사람들이 관련 일들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그런 일이 생겼다. 우리사회는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라는 타당성 구조에 걸맞게 경쟁력 있는 사람을 기르려고 애써왔다.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고 사회봉사도 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육신의 습관이 너무나 강하기에 선한 것을 조금 가르치는 정도로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는 자녀들이 제일 먼저 만나는 거짓 선지자

 

이런 모든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이렇게 자라나게 된 가장 밑바닥에 부모가 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부모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자녀로 기르기 위해 노심초사를 한다. 경쟁사회에 살아남지 못할까 걱정한다고 하는데 부모의 자기실현 욕구도 많다. 자기가 못해본 것을 자녀들에게 시켜보고 싶다. 대한민국에서는 음악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전부 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한다. 제가 보기에는 음치를 겨우 면한 정도이다. 부모의 실현욕구가 남아있다. 또 자식은 부모의 존재의 연속이다. 내가 시대를 관통해서 살아남는 존재가 자식이기에 그 자식에 대한 부모의 열정을 대단한 것이다.

 

그러한 부모의 소원자체가 뭐 그렇게 나쁘겠는가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자녀를 세상에 내실 때 계획이 있으실 것이다. 우리와 자녀들도 우주공간에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우주 공간에 자녀들을 우리를 통해 내보내실 때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을 것이다. 에베소서 1장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그 마음속에 품고 계셨고 사랑하고 계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자녀들을 보내주실 때 하나님의 목적이 계실 것이다. 목수도 의자를 만들 때 목적이 있는데 하나님이 고귀한 인간을 만들어 세상을 보내실 때 위대한 목적이 없겠는가. 그러면 목적이 있는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을 양육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공급하시지 않겠는가. 물론 인간의 부모라는 대리자를 통해 하시지만 너무나 자주 부모는 자신의 불안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전혀 무관한 욕심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계획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는 너무 중요한 존재이다. 상상이상으로 부모에게 엄청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엄마는 자녀들에게 있어서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만나는 거짓 선지자이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가 순진한 아기들을 어릴 때부터 양육을 해서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따위로 해서는 턱도 없다고 하면서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도록 강요한다. 예수 믿는 부모들은 그것에다 신앙교육도 한다. 열심히 교회를 데리고 다니고 밤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게 한다. 애들이 내용도 모르고 헷갈리지만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안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은 귀신같다. 부모들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 자녀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모를 잘 알고 있다. 부모가 자신의 삶은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로 살아가면서 종교생활에 대해서는 열심히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두 가지 유형으로 반응한다. 한 가지는 부모의 이중성을 막 공격한다. 위선자라고 하면서 자기식대로 간다. 그래도 그것은 소망이 있다. 그런데 그 부모를 그냥 따라가는 경우에 아주 문제가 된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잘 포장된 부모가 보기에는 자녀가 20살밖에 안되는데 열심히 살고 신앙생활도 잘하고 자식농사를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되는 그런 사람으로 높은 학력과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쳤기에 참으로 분별하기 힘든 이중성을 가지고 아이들이 살아간다.

 

"업사이드다운 킹덤"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외친다. 목사도 크리스천들도 출세해야 한다고 설교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박사학위도 따고 높아진 다음에 편하게 살며 많이 베풀어야 폼이 나지 않는가 하는데 참 모르는 이야기이다. 너무 젊어서부터 신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한사람이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상위 1%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희생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성의 많은 부분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희생과 양보와 낮아짐과 그런 것이다. 그래서 도날드 크레빌이 쓴 "업사이드다운 킹덤"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대해 쓴 책에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이 세상 가치와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업사이드다운이 아니라 이 세상의 타당성 구조를 고스란히 껴안은 채 하나님도 잘 믿는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열정적인 예배, 충실한 교회봉사, 헌금생활을 잘하면 신앙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물론 그것이 신앙이 좋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여러분의 신앙이 올바르다고 담보하지 않는다. 이번에 5번째 책을 냈는데 부제는 "도대체 당신은 어떤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까?" 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로마서 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는 시대 이 첫 창조역사가 마감되고 이어서 열릴 하나님의 완전한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풍족하게 열리지만, 지금 하나님 나라가 이 시대와 오는 시대가 중복되어서 가고 있는 우리들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주로 영적으로 누리게 된다. 그래서 성령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는 것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많은 소유들이 우리들의 삶에 행복을 줄 것으로 착각하지만 거짓된 안정감이다. 오히려 평안과 기쁨 이 세상에 환경이 좌우할 수 없고 이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 그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과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는 고린도후서 6장의 말씀을 너무 좋아한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진 자와 같은 만족감과 당당함과 긍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고 크리스천들의 자랑스러운 외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우리는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를 고스란히 안은 채로 예수를 믿는 바람에 한국교회는 영원히 깊은 잠에 빠져있다.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가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타당한 구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가르쳐야 할 텐데 세상이 교회에게 한 수 가르쳐 놓아서 이제는 많은 분들이 성공하기위해 교회에 모여든다. 혼자 능력으로 성공이 안 되니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기도 많이 해서 더 잘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자녀들 가운데 예수 믿는 자의 자녀가 많을까 아니면 예수 안 믿는 자의 자녀가 많을까. 예수 안 믿는 자의 자녀가 더 많다. 부자 중에 믿는 자가 많을까 아니면 안 믿는 자가 많을까. 안 믿는 자가 훨씬 더 많다.

 

그것은 우리들의 신실한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아니라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나라가 유지되어야만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계속 펼쳐갈 수 있으니 그 나라를 지탱해하시고 하나님 나라 안에도 필요한 일들이 있기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많은 돈을 맡기시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많은 지식이나 권력을 주신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우리사회에서 1%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는 안 그렇다. 그런데 그 1%가 되기 위해 모든 교인들이 기도한다. 하나님은 과연 누구에게 주시고 누구에게 안주시는가. 참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이 재벌기업의 직원이나 의사 법관 변호사들이 되기를 원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0.5% 밖에 안 된다. 그런데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정말 사람이 치사해진다. 제가 의대를 다닐 때 커닝을 한두 번 했다. 커닝한 것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안 보여준다. 내가 이겨야하기에 그렇다. 우스개 같지만 내면의 깊은 심성을 들여다보면 비열하다. 그렇게 된다. 물론 하나님 나라에 여러 가지 사람들이 필요하다. 탁월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안 그런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사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세월호 같은 사건의 경우 침을 튀기고 책임을 떠넘기고 욕을 하지만 사실은 바로 우리 아이들을 그런 사람들로 길러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 우리들의 꿈나무들이 자라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을 때 세월호 참사 같은 그런 참사를 빚어낼 후보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지 못하는가?

 

우리 몸에 밴 육신의 습관이 너무나 강렬하기에 도덕을 좀 교육하고 사회봉사를 좀 시키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육신의 습관은 굉장히 강력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을 때 살아남기 위해 오랫동안 단련한 기능이기에 여러분과 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5분 뒤의 일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아이를 내보내셨고 아이의 미래를 다 알고 계신다. 그러니 아이를 얼마나 잘 인도하시겠는가. 정말 우리들은 우리자녀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 자식사랑이라고 하는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옷자락 뒤에 숨어있는 무서운 이기적인 욕심은 수십 년을 교회를 다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그것이 잘못인지 모른다. 내 아이 잘되게 하려는데 자식사랑이 얼마나 숭고한데 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 교회는 교회개혁을 외치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의 행정체제, 독재체제, 세습체제, 목회자 윤리 물론 그런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잘못된 세계관이다.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타당성 구조를 거의 다 가지고 있다. 그것에다 플러스 완벽한 종교적인 행습을 하고 있다. 기도를 유창하게 하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공부하여 가르칠 수도 있고, 헌금생활도 잘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얼마나 완벽한가. 그런데 그것은 신앙의 자체는 아니다. 신앙의 현상이지만 신앙자체는 내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새롭게 들어선 성경적인 세계관이 아니면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섬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서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고 열정적인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들이 예배하고 있는 대상을 꺼내놓고 형상을 시켜보니 금송아지였다. 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아주 훌륭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 마음속에 사실상 숭배하고 있는 신을 꺼내보면 금송아지일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이 부분을 우리는 이 시대에 꼭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같은 부모보다 훨씬 더 고상하고 탁월한 자녀들에게 대한 꿈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그 아이가 가장 행복하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과 씨름을 많이 했지만 요즘 드리는 자녀에 대한 기도는 두 가지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해주시고,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수 있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하나님은 오케이, 모든 주도권을 받으셔서 자유롭게 아이들을 양육하실 것이다. 드린다 해 놓고 아이들 허리끈을 계속 잡아당기면서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대면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인가.

 

우리들의 신앙은 한마디로 굉장히 무례하고 참담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실제적인 삶의 모든 것 특히 가장 소중한 자녀문제만큼은 이 시대의 타당성 구조로 가져가고 있다는 배신은 하나님 앞에 하루바삐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신앙의 오류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자녀를 100%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리면 세월이 지나면서 무릎을 탁치면서 ‘역시 하나님이야’ 할 만큼 그 아이에게 가장 행복하고 멋진 인생이 주어질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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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세 목사의 특색있는 사역으로 70년 된 광주은광교회, 충성된 2017-03-20 2859
21 10년간 4개 교회 독립… 대전 노은교회 ‘아비목회’의 힘 충성된 2017-03-20 812
20 집중 사역 8개월 만에 기적같은 부흥 이룬 거창중앙교회 허성렬 2016-10-04 1505
19 발덴시안의 개혁과 신앙의 자취 충성된 2016-09-06 1291
18 성경적인 믿음과 비성경적인 믿음 허성렬 2016-06-02 924
17 위기의 절벽 끝에 선 한국교회 허성렬 2016-03-30 970
16 순교정신의 반대는 성장주의 충성된 2015-12-08 923
»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충성된 2015-10-30 1292
14 교회안의 뒤틀려진 오순절 신비주의 미혹을 경계한다 충성된 2015-10-12 1277
13 한국교회, 왜 민주적이어야 하는가? 충성된 2015-09-29 1062
12 청소년 전도 방법 5가지(켈트) file 충성된 2015-08-31 3592
11 부모의 이중적 신앙이 주일학교를 죽인다. file 충성된 2015-07-02 1330
10  우리시민교회 분립개척 이야기 file 충성된 2015-06-11 1635
9 주일학교를 죽이자 충성된 2015-05-12 1306
8 서울시민교회의 아름다운 분립, 우리시민교회 설립예배 [1] 허성렬 2015-01-06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