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믿음과 비성경적인 믿음 


스데반 황 목사(그리스도보혈교회 담임)

필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시면서 단 한 가지에 대하여 매우 예민하신 것을 발견한다. 칭찬과 꾸지람을 하실 때도 어떠한 행동 및 결과보다는 제자들의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제자들의 믿음이 연약할 때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 가셨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였느냐"

또는 백부장의 믿음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다"하시며 칭찬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매우 예민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든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믿은 자이다. 믿음은 믿음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믿음의 대상에 의하여 그 믿음이 죽은 믿음이 되기도 하고 산 믿음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여 신(神)이 아닌 것을 신으로 ‘진실하게’ 믿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믿음의 대상이 허상이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속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믿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판도가 많이 달라진다. 믿을만한 사람을 믿었을 경우 그 사람은 안전하다. 그러나 사기꾼을 믿었을 경우, 그 사람의 삶은 언제나 멸망의 위기에 처한다.

성경은 성경적 믿음과 비성경적 믿음을 구별하여 놓았다. 이러한 구별을 하기까지는 많은 연단과 말씀에 대한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비성경적 믿음은 세뇌가 있다. 세뇌란 자신의 이성을 강제로 어떤 틀에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외부적으로 또는 스스로 어떤 사람의 생각을 자신에게 세뇌 시킬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세뇌에 잘 걸린다. 악한 무리들이 함께 모여 있으면 그들은 서로 세뇌한다. 비진리를 진리로 믿도록 서로 부추긴다. 그러한 세뇌를 통하여 함께 집단 행동을 한다.

나아가 종교에서 세뇌의 요소는 다분하다. 심지어 교회 내에서 세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어리석고 불쌍한 교인들이 옳지 않은 목사들에 의하여 세뇌 당하기도 한다. 모든 이단들이 세뇌에 의해 유지된다. 세뇌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교제 및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역사와 전혀 상관이 없다. 사람의 사상, 어떤 주의, 종교 등이 세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잘못된 교리도 세뇌에 속한다.

둘째, 적극적인 사고 방식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러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무관하다.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인간의 잠재력을 스스로 일으켜 보겠다는 사상과 같다. 일종의 세뇌일 수 있으나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이 땅의 형통을 바라본다는 데서 뚜렷한 특성을 갖게 된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내 혀를 다스릴 수 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그 사람의 의지를 강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 목표와 믿음에 있어서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는 오히려 전혀 반대되는 개념이요, 양의 탈을 쓴 인본주의적 사상일 뿐이다.

셋째, 하나님을 강요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기도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강요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세워놓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단지 대상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는 점이 다르다.

종종 "이렇게 안하시면 가만 두지 않습니다"라는 식의 강요를 믿음으로 오해하는 자들도 있다. 강청이라는 말을 악용하는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강청하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넷째, 지적 동의가 믿음은 아니다. 야고보서 2장을 보면 마귀들도 진리에 대하여 지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적 동의가 참된 믿음의 요소에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적으로 동의하였다고 하여 그가 가진 믿음이 성경적인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 및 복음에 지적인 동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자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러한 믿음은 전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다.

다섯째, 하나님에 대한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들이 믿음은 아니다. 신학교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나 복잡한 논리들을 배운 적이 있다. 사색할만한 내용들이지만, 이러한 이론들을 믿는다고 하여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말이 바른 교훈, 바른 교리를 거부하자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참된 성경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바른 교훈, 바른 교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깊게 따질 수 있다고 하여 성경적인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섯째, 세상의 형통, 건강, 일들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믿음이 있으면 건강하여지고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교회를 타락시키는지 모른다. 믿음이 강하여지면 이 세상에서 소위 잘산다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요 비성경적인 믿음이다.

일곱째, 도박이 믿음이 아니다. 해보고 되면 좋고 안 되도 상관없는 그러한 종류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믿지는 셈 치고 예수 한번 믿어 보세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또 다른 목적을 세워두고 그 목적을 위하여 주님을 이용하려는 심보가 다분하다. 그래서 요행스럽게 믿어 잘되면 예수를 믿고, 믿었는데 일이 안되면 욕을 하고 떠난다. 이러한 도박성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도박성이란 뜻은 자신의 목적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바른 믿음은 어떠한 것인가? 바른 믿음의 내용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많은 내용을 다룰 수 있겠으나 요약만 하겠다. 부족한 종에게 주께서 성령과 성경을 통하여 깨닫게 한 내용들이다.

첫째, 믿음의 대상에 언제나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성 삼위일체 주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적 믿음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인격적인 믿음은 우리의 삶에 순종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내가 어떤 법칙 조항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의식하는 가운데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기에 따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의해 나타나는 행위들이다. 특별히 주 하나님의 최고의 약속이신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 성령의 역사를 언제나 의지하게 된다.

둘째, 성경적인 믿음은 주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신뢰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여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가운데 악에게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마음 속에 시험과 투쟁이 강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결국 믿음이 이기고 주님께 나아간다. 환경을 초월하며, 인간적 생각을 초월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송하고 감사할 이유들을 찾게 된다. 그 이유들은 이 세상에서 내게 아직 남보다 나은 것이 있다는 비교를 통한 감사가 아니라 영원한 세상을 볼 수 있는 차원에서 감사할 이유를 얻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근거로 하여 반드시 내게 영원토록 유익한 것들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임을 의심치 않게 된다.

세째, 구원에 대한 믿음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과 연결된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고,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아쉬울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하나님의 불변하는 은혜의 언약이 언제나 성경적인 믿음의 바탕에 있다.

넷째, 성경적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믿음을 잃을 때 인간적 방법을 동원하게 되고 하나님 보다 앞서게 되지만, 성경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평안과 함께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대로 주께서 시키시는 데로 할 뿐이다.

다섯째, 성경적인 믿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유지된다는 점이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주 예수님과 하나되는 체험을 할 수가 없다. 주님과 하나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가능하게 할 수 없는데, 오직 "믿음"만으로 주님과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가 된다.

여섯째, 성경적인 믿음의 가장 큰 특성은 인내이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항상 인내한다. 그러나 그 인내 중에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시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무도 모르는 기쁨과 평안이 넘친다.

일곱째, 성경적인 믿음은 언제나 영원한 가치를 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추구하며 주님과 하나가 되기를 가장 추구한다.

결론은, 성경적인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 분의 약속을 믿고 그 분이 시키는 데로 따르는 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 안에서는 성도가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아계신 주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계속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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