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1명의 소중한 생명이 살아 돌아와 꽉 막혀있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이는 듯 합니다만, 내가 서 있는 땅이 아프간이 아니라 필리핀이라는 사실이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한 상처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8월 말까지 철수하라는 대한민국 정부의 명령을 받아 안식년을 시작한 이곳이 상당히 낯섭니다.  떠나고 자리잡고 하는 데에는 이골이 난 저희 가정이지만 이번에만은 아내의 잔소리도, 아이들의 불편한 마음을 아무 말없이 받아들이는 저를 보면 더욱 실감합니다.
한참 인질 사건의 와중에 아프간에서 쓴 글을 바로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서두르는 감이 있어서 이제 올려도 되겠다 싶어서 올립니다.  한국교회 모 단체에서 쓸데없이 ‘앞으로 아프간에 선교를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것을 보며 더욱 마음 아파서요.  아예 말씀을 마시든지.  지금 무슨 말이 필요한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개’를 위하여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인질사건’이 아프간에서 일어난 다음 대한민국 정부관계자들은 한국 사회가 일종의 ‘패닠(낭패감, 공황)’ 상태에 빠져 인질들의 협상에서 예상되는 금전적인 피해는 제외하더라도 엄청난 국가적인 손실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많은 한국민들은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단기봉사단의 실체는 선교단이며 인질과 그 교회, 나아가서 한국교회에 대한 온갖 비방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참 많은 분들이 ‘어쨌든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지’ 하는 단서를 붙이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비판적인 시각에는 별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한편 협상이 전혀 진전이 없는데다 이중 삼중으로 시달리는 인질들의 가족과 ㅅ 교회가 겪는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질들은 어떨까요.  
한국 교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습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이런 저런 핍박을 받게 되는 것’, 이번 일도 그런 일 중의 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많은 네티즌의 소리를 그저 ‘사탄의 하수인들의 헛소리’로 치부해 버리고 있습니다.  
모 단체가 지난 2006년 8월 ‘아프간 평화대행진’을 계획했습니다.  약 2천명의 단기 팀이 들어와서 아프간 선교에 획을 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에 카작스탄 알마아타에서, 2004년 예루살렘에서의 성공사례를 들면서(자기들만의 평가이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서 아프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하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체에서 아프간에 파송한 사역자들을  모아, 이번 행사에 대한 적극적인 활동을 주문 했었습니다.  대부분 현장 사역자들은 이 일이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반대하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이미 몇 년 동안 ‘field operation’ 이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단기 팀을 운영해보니 별로 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자신 있는 발언이 여기 저기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적어도 10년 이상을 현지에서 활동한 충직한 그 단체의 멤버가 이 행사는 지금의 아프간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다른 멤버들의 소리에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 단체는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 행사의 방해꾼들은 분명 현지사역자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각개전투 식으로 타 단체장들을 한 사람씩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 동의를 구하면서 ‘다른 단체장들은 동의를 했는데…’라고 말을 흐리면서 동의를 주문을 했습니다.  몇몇 분은 반대했지만 그때까지도 사안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 몇 분들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가 가져 올 파장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함께 모이니 저들의 거짓이 드러나고 거기에 참여했던 그 단체의 한 자매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 행사를 하려고 하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우리의 앞길을 막느냐’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이후 이 행사를 막무가내로 진행하면서 한국에서, 이곳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쳤고 급기야 이곳 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국정부와 협조하여 행사의 많은 부분이 불발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지방 곳곳에서는 산발적으로 소규모 행사들이 치러졌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아프간에서 사역하고 있던 사역자들이 겪은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아프간으로 입국이 금지되고, 급한 용무로 출국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이후로 한국사람들은 모두 선교사(이들의 말하는 선교사는 ‘십자군’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음)로 알게 되었습니다.  피살, 피납 사건을 우려한 한국 정부는 나름대로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 아프간에서 한국사람을 끌어낼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구요.  그나마 나름대로 모임을 조금씩 갖고 있던 사역자들은 이후로 전혀 모임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이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경찰이 부활되고 지금까지 모임을 가졌던 현지 리더들을 불러 위협하고 하는 일이 생겨 모임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해에도 그 단체가 한국에서 팀을 보내려고 시도하니깐 한국에 있는 아프간대사관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으니 아프간 현지에 있는 모 단체에 계속 이런 저런 끈으로 초청장을 발급해 달라는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물론 그것을 알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만.  이번 인질사건에서도 애매하게 고난 받는 모 단체는 카불 본부에 처음 초청 건이 왔을 때 그 일정을 보고 거절을 했었는데, 관련된 칸다하르 지부 책임자를 설득해서 들어왔던 겁니다.  ㅅ 교회 목사님은 한 0 단체 이사장으로 있지만 작년에도 평화행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발언을 몇 차례 했고 교회를 그 단체의 훈련장으로 빌려주는 등 협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인솔한 세 분은 모두 ㅅ 교회 소속이라 하지만 사실상 IACD 소속입니다.  (*이 글이 나가면 아마 참 많은 인터콥 사람들이 벌떼 같이 저를 비난할 것입니다.  말꼬리를 잡으면서. 그 비난이 귀찮아서 그 동안 말하지 않고 있었던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말하는 겁니다.  부디 자성하는 마음을 갖기 바라면서 )  
비단 이 단체만 동원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9.11 이후 지난 5년에 걸쳐 여러 단체를 통해서 참 많은 방문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번 팀의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도 여러 차례 방문이 이루어졌고 또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냐 아니냐 하는 차이지 앞선 모 단체와 비교할 때 단기 팀 받기를 좋아하는 면에서는 별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왜 위험한 곳에 왔느냐’ ‘국가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갔느냐’는 비난부터 ‘왜 인솔자가 그렇게 생각이 없었느냐’ ‘안전불감증’ 등등 여러 가지의 원인을 말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선교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기독교는 위험을 무릎 쓰고 피를 흘리면서 전도와 봉사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어렵고 힘 드는 곳일수록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향입니다.  이는 비 그리스도인 봉사자들도 비슷합니다.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느냐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경찰에 알려서 호위를 받지 않았느냐 하는데, 여기 경찰들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알리는 것이 득보다는 해가 된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물론 좀 더 조심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사후 평가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단체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이곳 여러 단체들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그저 조심성 없는 단기 선교팀의 사례로 넘기기에는 너무도 큰 사건이었고, 이를 통해서 한국교회에 대한 하나님이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입니다.  
올해 들어 한국에서는 1907년 평양 대 부흥을 꿈꾸며 100주년을 맞는 2007년을 부흥의 해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 행사들이 있었고 이후로도 계속 되겠지만, 이번 일로 행사의 개최가 불확실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CGN방송을 통해서 얼마 전 회개 부흥성회를 보았지만 그리 감동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회개는 해야 한다고 들 하는데 알맹이가 빠진듯한 느낌은 왜 입니까.   아니면 알맹이를 수천 번 말했는데도 지나친 것일까요.
2007년 한국에 대해서 두 분(맄 조이너스, 로닝커닝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07년에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7,8월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구요.  
‘회개’는 바르지 않는 길에서 돌아서서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한국교회가 가진 바르지 못한 교회성장운동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작년의 대규모 평화행사가 기획되고 치러질 수 있었던 것도 한 단체로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 참여했던 인적, 물적 자원의 대부분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성장하고 그리스도인은 거기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백 번 동의 합니다만, 문제는 과정입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과정에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행동들이 있고 불법과 불의가 있다면 목적이 이루어진 들 온전치 못한 결국 해가 되는 것입니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오늘날의 교회성장운동을 고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선교운동 역시 이와 같은 일들을 수없이 겪게 될 것입니다.  
70년대에 ‘로버트 슐러’라는 분이 쓴 ‘불가능은 없다’라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신호탄으로 교회는 성장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한국교회는 소수이지만 겸손과 섬김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고아와 과부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목사님과 장로님과 집사님은 존경 받는 사회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교회는 총동원전도운동과 거기에 쓰이는 책자들, 대규모 행사들, 전도폭팔운동등 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성장해야 한다는 대 사명에 목을 매달기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경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새 신자들과 교회들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성장을 위해서 창고를 크게 짓는 일(그때 제가 들은 이야기 입니다)에도 과감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축복의 통로로 교회건축에 투자를 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곳에는 농촌에서 올라 와 신발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에서 일하시던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의 신앙심과 열심 역시 대단했었습니다.  피를 토하면서까지 벌어 헌금하시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기뻤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이 역사에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보람 있었던지요.
8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또 다른 성장운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제자운동이었습니다.  이 역시 교회성장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예외는 있지만)  이와 동시에 지상 대 명령 인 ‘세계선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적, 물적으로 풍성해진 한국교회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세계선교라는 소명에 한국교회는 가슴 벅차했습니다.
90년대 들어서 한국선교의 폭발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 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나갔습니다.  이후로 세계 2위의 선교 파송 국가가 되기까지 참으로 쉬지 않고 달려 왔습니다.  세계 1위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흥분하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세계의 여러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극단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너무 성급하다.  진짜 열심이다.  어떤 분들은 두 가지 다를 인정하며 긍정적인 것을 살리고 부정적인 것은 버려라 라는 주문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는 한국 사람들로 인하여 불편한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경험했던 성장논리로 선교를 접근하며 온갖 물량 공세를 하며, 이게 맞는지 틀린 지 고민을 뒤로하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통에 선교 현지가 황폐되어 가는 일들이 지난 15년 동안 많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의 뒤에는 미국의 교회성장운동이 있엇습니다.  지난 70년대부터 풀러신학교를 중심으로 맥가브란을 비롯해서 피터와그너, 랄프윈터 등 소위 교회성장운동의 선구자들이 수많은 교회성장의 방법들을 내 놓았습니다.  교회는 길목을 잘 잡아야 한다. 조직을 어떻게 해야 한다.등등의 세상의 비즈니스 논리들을 교회에 제시했습니다.  게다가 미전도 종족운동, 10/40 창 등을 내 놓고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이 창에 집중하도록 하고 거기에 있는 미전도 종족이 몇 부족이 되는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고 세뇌시켰습니다.  10/40창 안에는 한국도 있고 중국도 있습니다.  요즘도 ‘창’ 타령하는 사람들이 소위 투르크 창, 페르시아창, 실크로드창 등을 쉴새 없이 내놓고 있습니다.  미전도 종족운동에서 전방 개척운동등 마치 운동이 세계선교를 다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식시켜 놓았습니다.
우리는 10/40창, 미전도 종족운동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영혼이 많은 서구를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기독교 나라라는 유럽의 수 많은 나라들이 이미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나마 그곳에 있는 무슬림들에 대한 선교사역을 하는 분들이 한국에서 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만, 많은 서구사람들이 잃어버린 양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풀러 신학교는 많은 면에서 공헌을 했습니다.   특히 문화인류학 쪽에서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라든지, 어떻게 그 분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긍정적인 책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체 교회를 잘못된 성장논리 쪽으로 치닫게 만든 그 잘못에 대해서는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 끝에는 민족이 민족을 미워하고 갈라서고 싸운다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미전도 종족운동을 통해서 민족들이 갈라서게 하는 것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O 국에서 10여 년의 사역을 마무리 할 즈음 미전도 종족운동의 일환인 partnership 모임이 캐나다에서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호기심이 발동되었습니다.  과연 이 운동이 o국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실제 조사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0 partnership 에는 미주에서 0 종족을 입양한 백 여 개 교회의 지도자들이, 0국에서는 5명이 참석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미 책임자와 현지 0종족 지도자들 사이에 불편한 일이 생겼고, 토론토 모 한인교회에서 있었기에  한국 사람 셋이나 초청받아 갔습니다.  그런데 대회관계자가 메일로 저희 한국인들에게는 발표할 시간을 45분 줄 테니 한 사람에 15분씩을 써라. 저희 세 사람은 열심히 각자의 임무를 맡아서 15분만에 끝을 낼 자료를 준비해 갔습니다.  제가 맡은 분야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의 0국의 신자, 교회개척현황 이었습니다.  실제 발로 뛰면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렇게 미전도 종족운동을 외치던 서구250여명의 선교사를 통해서 단 6개의 교회가 개척되었고 그것도 순수 0 인만 모이는 교회는 2개였습니다.  한국선교사 그룹은 80여 개 정도였습니다.  전체 250여 개의 교회 중 카리스마틱 교회와 러시안 벱티스트들이 차지하는 숫자가 160여 개였습니다.  위의 두 교회는 미전도 종족운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벱티스트들은 이건 성경적이 아니다라고 교회차원에서 선포를 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선교사들 중 일부는 미전도 종족 운동에 충실하여 0 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몇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지역 집단 별로 나눈 데이터를 중심으로 설명해 나가는데 참석했던 분들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5분이 지났지만 더 듣기를 원해서 50분 가량을 썼습니다.  모임 후 북미 사람들이 당황해 하면서 이게 사실이라면 미전도 종족 운동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라는 소리들이 들려 왔습니다.  
이 이론이 비 성경적인 이론이라는 것은 현장을 통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민족 별로 선교를 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다민족 사회인 0국에서 종족 갈등을 야기한 것도 보았습니다.  

지난 15여 년 정도 선교사들을 사로잡았던 미전도 종족운동이 언제부터인지 화두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세월 약인 듯 싶습니다.  

최근 몇 년 한국교회 중 일부는 장기선교를 아주 폄하시키는 일을 단행했습니다.  단기팀만을 통해서 선교를 하겠다는 서울의 유명한 c 교회.  한국에서 단기팀을 훈련하면서 선교지에 가면 절대 그곳의 선교사들과 만나지 말라. 여기서 계획한 대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냥 해라. 라구요.   앞서 말씀 드린 그 단체도 현장 선교사들의 말은 둘째고 본부에서 기획한 일에 대해서 현지 선교사들은 그냥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다가간 것도 그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단지 그 단체나 그 교회 뿐 아닙니다.  수 많은 교회들이 여기에 동조를 하고 단기선교운동을 통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내외에 알리고 싶어합니다.   그들이 가져 온 성과는 너무 과장되어 있고 오히려 현장에서는 그들이 남기고 간 뒷정리에 선교사들은 힘부쳐합니다.  아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 교회가 원하는 것 무엇일까요.  할 수 있으면 교회의 우수 인력을 해외에 보내지 않고도(그들이 하는 교회 봉사와 헌금이 크니깐) 선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교인들에게 보이고 싶은 극단적인 제 판단이 제발 틀리기를 바랍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기선교를 선호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 선교지에 가서 활동해 보면 그래도 선교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의도도 있지만, 뭔가 부담을 떨쳐 버리려는 제스쳐도 있습니다.  특히 의료인들은 선교에 대해서 참 많은 부담이 있는 가 봅니다. 10여 년 전에 제가 있던 선교지에 의사 몇 분들과 함께 의료팀이 왔습니다.  그런데 삼일 만에 의사 분들은 떠나고 나머지 간호사와 팀이 남아서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분들이 일찍 떠났습니까.”  그러니깐 “하루 병원 문 닫으면 손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을 껴서 왔고 추석이 지나니 빨리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분들도 말하면서 쑥스러워 했지만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현장 선교사들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않고 며칠 동안 계속 환자만 치료하다가 그냥 갔습니다.  그 다음해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매 해 오지 마시고 소명을 가지신 한 분을 support 해서 보내시지요. 라고 했습니다.  참 기분 나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동안의 의료봉사를 통해서 수 백병의 사람들을 보았지만 그 것이 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행심과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급기야 어떤 어떤 팀은 공항에 마중 나온 선교사에게 ‘선교사님 이제 게임 끝입니다.  우리가 왔으니 선교사님은 이곳에서 추수만 하면 됩니다’ 했다 합니다.  중보 기도 팀으로 선교지에 오신 어떤 권사님은 우리가 저 산에 가서 ‘00’ 시내를 향하여 손을 들어 기도하니 덮고 있던 검은 구름이 ‘뻥’하고 뚫렸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문을 여셨습니다.  이미 여셨고 이미 역사하고 계시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먹히는 것은 무엇 입니까.
단기선교가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기선교운동을 통해서 교회는 성장을, 개인은 만족을 가지는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간절히 원하시는 ‘은밀함’의 미덕은 교회성장운동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단기선교운동에는 다른 문제가 아니라 그 동기의 불순함에 있습니다.
교회성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여러 선교단체가 설립되었습니다.  그 선교단체들 역시 성장을 위해서 단기 팀들을 계속 활용 해 왔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성장시켜야겠다는 동기가 무엇인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동기가 된다면 그 어떤 희생을 무릎 쓰고라도 나아가야 합니다.  동기가 순전하면 과정도 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성장시켜서 잘난 체 하려는 동기가 있다면 이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금 한국 내에서 빗발치듯이 비난하는 이들의 소리를 잘 살펴보면 ‘한국 내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들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해외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것이 우습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이라고 안 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 선교사로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 최근 자성하며 첫사랑에서 참 멀어진 저를 발견했습니다. 나름대로는 검소한 생활을 한다고 해 왔는데, 깊이 반성해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인지부터 검소한 삶이 많이 사라져 있습니다.  종이 한 장, 펜 하나, 먹는 것, 쓰는 것 에서 너무 많이 양보하고 있었습니다. 말에도 진지함이 없고 농담하는 일이 잦고 어느새 말이 가벼운 사람이 되어 있는 모습 또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희생과 침묵의 대명사였던 ‘목사’가 아니라 떠들고 대접받는 사회의 인사로서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왜 목사가 대접받아야 하는 지 따져보면 이유가 없습니다.  굳이 대접이라면 삶의 모범으로 오는 존경함이 최고가 아닌가요.  
대부분의 교회성도님들은 순수합니다.  교회의 지도자 특히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은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삶뿐 아니라 교회 전체가 추구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바른 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흔히 위기는 기회다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징중의 하나가 회개입니다.  1907년의 부흥은 회개부터 시작되었는데 자신의 아내를 죽인 행위부터 간음과 거짓말등 구체적으로 회개했다고 합니다.  어물거리지도 않고 죄악을 자복했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갖고 갚을 것은 갚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잡고 다시는 그 죄를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부흥을 맛 보았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교회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자성해야 할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장에만 마음 빼앗겨 성경적인지, 바른 것인지를 따져보지 않은, 그래서 그 과정에서 저지른 수많은 불법과 오류들을 아직도 회개 하지 않으려는 우리 한국교회의 잘못에 대해서 저 역시 뉘우치는 마음으로 밝혔습니다.    
저는 이번에 아프간에서 철수를 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 있으면서 회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No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가서 정말 돌아보고 마음을 찢는 시간을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 철수에 대해서 주 아프간 한국 대사관에서 대책회의를 가지던 날, 대사님이 좀 흥분하시니깐 속에 있던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우리 한국 NGO는 거듭나야 합니다’ 라구요.  저에겐 마치 복음처럼 들렸습니다.  
‘거듭나야 한다’   불신자인 대사님의 발에 밟히는 느낌은 들었지만, 밟혀서 새로 거듭나는 충실한 보리 이삭이 된다면 얼마든지 받겠다 싶습니다.


*이 글을 다른 곳에 퍼 가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 된 우리 식구님들과 한 번 고민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쓴 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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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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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닉슨

2007.09.05
18:03:02
(*.99.91.164)
참으로 다행한 이주형 선교사님의 필립핀 행은 밤낯 공사간에 이름을 되내이며 기도하고 있는 우리 사상교회 성도님들의 긴장을 많이 덜고 있읍니다. 세계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탈레반의 몰각한 처사는 여화와의 엄중한 체찍이 내릴줄압니다. 회개를 주장하신 선교사님의 글월이야 말로 다같이 공감할만한 한국교회의 개선점임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지에서 고난을 체험히시면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의 일방적인 활동내력도 우리사상교회 주력선교사로서의 입지를 흐리게 하고 있음을 알으셔야 합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과정등을 현장에서 목도하신 이선교사님께 서 한국에 들리셨다가 현상들을 설명도 하시고 얼굴도 보신후 안식년을 보내시든지 했으면 참좋았을

이주형

2007.09.09
01:25:54
(*.60.241.233)
닉슨 선생님
몇 차례 리플을 통해서격려와 개인적인 부족함에 대해 지적해 주신 것 감사 올립니다.
사상교회의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저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고 계시지만,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속히 사랑하는 분들을 뵙고 싶지만 '현재 리모델링중이니 끝나는 시기에 오라'는 말씀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글로라도 올렸습니다. 제게 좀 더 꾸짖으실일이 있으시면 제 메일로도 활용해 주십시오. krzlee@hanmail.net 입니다. 그리고 실명을 쓰시면 더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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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이주형 선교사님의 9월 21일 서신입니다 [2] 정희채 2008-09-22 3804
77 주님의 사랑안에서 이주형 2008-07-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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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re] 편히 쉬소서 박세훈 2008-06-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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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사상교회 방문하시는 일본 신삿포로성서교회(박영기선교사) 성도님들 [1] file 김종한 2008-05-13 2883
72 「아오모리」 선교 소식 (제110신) [154] 손규식 2008-03-18 10042
71 순례길에서 [2] 이주형 2008-02-14 1315
70 「아오모리」 선교 소식 (제109신) [1] 손규식 2008-01-08 1266
69 2008년을 맞이하며 이주형 2008-01-01 1142
68 축하 올립니다. 이주형 2007-12-20 1174
67 20071115-1120 일본 삿포로 김치 및 찬양선교 사진 [1] 김종한 2007-11-28 1331
66 「아오모리」 선교 소식 (제108신) 손규식 2007-11-25 1140
65 사랑에 감사올리며 이주형 2007-11-13 1087
64 중국선교지 방문 비전트립 참가학생 모집 안내 허성렬 2007-11-08 1143
» '회개'를 위하여 [2] 이주형 2007-08-30 2358
62 회상 [5] 이주형 2007-08-13 1343
61 감사올리며 [3] 이주형 2007-08-02 1201
60 아프간에서 올립니다. [10] 이주형 2007-07-25 1556
59 6월 파라과이에서 김혜영 2007-06-29 1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