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sohnks/30119657873

뒷 줄 좌로부터-김장권 영수, 박도애 집사,정찬모 영수,정해동 집사(목사),이승원 조사(목사)
앞 줄 좌로부터-김용수 집사의 부인(김금연), 황호연 집사의 부인,장연식 장로,박자연 집사,강상은 목사

1.기념 사진을 보면서
1934년 9월 30일에 촬영한 빛 바랜 오래된 사진 한장에는 사상 교회의 역사가 차곡 차곡 쌓여 있다. 좌정하고 일어선 어르신의 면면과 사진에는 빠졌어도 누구 누구라면 알만한 당시의 인물들을 살피면 가로 세로로 엮인 역사의 퍼즐(낱말 채우기)을 푸는 듯 하다.그로부터 3-4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숫한 이야기가 여기서부터 줄줄 나온다.

흔히 초대 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분으로 괘법의 장연식,손치만, 삼락의 김용수,덕포의 황호연,김석연,감전의 박자연 제씨를 거명하며 1909년 10월을 교회의 연도의 기산으로 잡지만 사실 손치만 님은 장연식 님의 권고로 양산에서 이거하여 1910년 경에 입신하게 되었고 김석연 님도 덕포의 오랜 토박이로서 신병으로 인하여 복음을 받아 들였다고 한다. 대체로 초대 교회 어른들의 입신 경위는 잘 알 수없고 당시만해도 교회에 나오면서도 장죽을 물고 등에 꽂고 다니던 때였다.  

처음 시작한 덕포 예배당은 초대 교회의 시작이 그러하듯, 가정집에서 시작했던 기도처 혹은 예배처에 불과했던 초가 2칸의 협소한 장소였다. 믿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의 형태로 자리잡았다고 보는게 옳을 것 같다. 교회의 모습을 제대로 갖춘 시기를 가느곡 역전 부락 교회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전 교회는 정식으로 등기가 되어 있다. 초가 4칸의 예배당이 남쪽으로, 사택이 2칸이 동쪽으로 배치된 두 동의 건물이 기역자 형태이다. 사택에는 교회를 돌보는 사람이 상주하였으며 순회 전도사들이 쉬어 갈 수가 있었고 때로는 전담 교역자가 거주 하기도 했다.

이때 새벽 기도회와 주일 학교가 시작되었고 교회 청년들이 야학으로 한글 학교를 열었다. 장연식 장로가 이사갈 때 교회 대표 제씨(손치만,정찬모,김장권)를 공동 명의로하여 이전 등기 하였다.

창립 25주년 기념 부흥회를 하면서 찍었던 당시 설립자의 면면을 보면 설립 연대와 설립자의 정확한 증빙 자료로서도 소중하거니와 나아가 든든한 교회로 뿌리를 내린 기쁨과 보람이 가득하다. 정성껏 갖춰 입은 의상과 당당한 어른들의 모습이 무척 엄숙하고 자랑스러워 보인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설립 교인 중에서 김용수,황호연,김석연,손치만 제씨가 이미 소천하셨다.

이들의 면면을 소개한다.

2. 이승원 조사
교회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자고 주선하신이는 틀림없이 뒷줄 오른 쪽에서 신식 양복을 차려입고 당당하게 서 있는 당시 교역자 이 승원 조사였을 것이며 20대 후반으로 추측 한다. 경남 욕지도 출신으로 일찍 복음을 받아 입신했으며 일본으로 중국으로 다니며 독립 운동에도 관여 했다.
인근 대저동의 대지 교회에서 원로 목사로 은퇴 하셨는데 기억과 기록하는 습관이 출중하여 목회 기간동안 대지 교회 일지를 촘촘하게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후세에 역사 편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목사가 대지 교회에 시무 하실 때 항상 교회당 정면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3.장연식 장로
영선곡(초량) 교회 출신으로 당시 이 지역의 금융 조합에 근무하였으며 부산 제 2상(부산 상업 고등학교 전신)을 졸업했다. 이곳에 이사한 이후에도 한 동안 지인들과 영선곡 교회로 걸어 다니다가 1909년 즈음 덕포동 중간 강선대 부근(현재 덕포 1동 사무소 부근)에
초가 두 칸을 얻어 예배처를 삼았다.
1915년 역전 부락으로 교회당을 지어 이전하고 1918년에 장로로 장립하므로 초대 장로가 되었다. 1926년 경에 사업차 이사갔으며 영선곡에서 분리된 영도 교회의 장로로 섬겼다.
1934년 교회 25주년 기념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서 특별히 오신듯 하다. 영도 제일 교회 100년사에 장 장로과 그의 가족(사위 이남식 장로)에 관한 기록을 참고 하였다.

4.김장권 영수
뒷 줄 왼쪽 끝에 서 있는 분이 김장권 영수(1893-1948)이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분이 모친인 김 금연 집사(1864년생)이다.
김장권 영수의 아버지 김용수 집사(1852-1929)는 유두리(현재 삼락동)에 거주했으며 낙동강 지류가 만든 삼각주로서 농지가 비옥했다. 당시에는 샛강으로 분리된 작은 섬이었고 김녕 김씨 류두 문중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김장권 영수는 슬하에 2남 3녀를 양육하였으며 구근숙 권사(장남 김봉찬 님의 처)의 3남인 김인구 님이 현재 시무 장로로 대를 이어 교회를 섬기고 있다. 김 장권 영수의 차녀인 김봉금 권사는 이재수 님과 결혼하여 신앙의 일가를 이루었고 현재 괘법동에 위치하는 한남 교회를 분리 개척하여 장로로서 섬겼다.

5.정찬모 영수
뒷 줄 왼쪽에서 세번째 서 있는 분이 정찬모 영수는 설립자 김용수 님의 사위(처 김말남)이며 김장권 영수의 매제이다. 직업이 목수로서 1928년 서 괘법 교회를 지을 때 손수 나무를 다듬고 쌓아 올리며 교회를 짓는데 앞장 섯다.
1915년에 지은 초가 4칸의 역전 교회가 경부선 철도의 복선화로 인하여 철거 명령을 받고 그 보상비를 토대로 하여 대지 75평에 건평 20평 기와 목조 건물을 지었다. 아들인 정시화 집사도 이곳에서 자라 대구 계성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6.박도애 집사
지금 우리 교회가 자리 잡은 터가 사상면이 부산시로 편입 되기 전까지 동래군 사상면 사무소의 뒷산이며 박도애 집사의 친정인 허씨 문중의 산소가 있는 선산이었다.
1972년 시장통 교회(건평 45평)가 협소해서 교회 이전을 계획하고 1970년 경 그때 이미 노령이신 박도애 집사를 찾아가서 교회 사정을 말하자 장남인 허증수 님과 상의 하여 흔쾌히 선산을 교회에 기증하였다.
박도애 집사는 시집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일찍 부군을 여의고 연연생으로 태어난 세 아이를 믿음 안에서 잘 양육했다. 아들인 허증수 님은 해방 후 미 군정청에 근무하면서 본래 적산이었던 시장통 교회 부지를 교회 앞으로 이전하는데 졀정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한국 전쟁 중에는 문교부 차관으로 화재에 소실된 사상 국민 학교를 건축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평생을 경희 대학교 교수로 봉직했다.
큰 딸인 허장수 님은 사상 교회 2대 장로가 된 방문수 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8남매를 낳아 믿음의 일가를 이루었고 자녀들이 교회의 여러 부분에서 잘 섬겼다.

7.강상은 목사
오른쪽 앞줄에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성경을 펴고 근엄하게 앉은 분이 바로 해방 이후 재건 교회의 지도자인 강상은 목사(1890-1972)이다.1929년에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교회의 합직 목사로 시무하다가 사상 교회 창립 25 주년 기념 부릉회 당시는 진해 경화 교회 단독 담임 목사로 시무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릎쓰고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웅장한 교회를 짓고 교회 빚을 청산 과정에서 성령의 은사를 강하게 체험하였으므로 떠거운 간증이 불을 토 할 때였다. 당시 여러 교회가 너무 자주 집회하기를 원하므로 당회가 외부 집회를 금하였고 1934년 9월에 가서야 외부 사경회 청빙권을 허락했다.
일제의 신사 참배로 인하여 투옥되고 그 고초로 인하여 건강이 악화되어 가석방되면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에 신실한 후배인 최덕지와 함께 재건 교회를 시작하였으며 재건 교회가 가장 보수적이고 율법주의적인 교회라 하고 여러 분파로 나뉘어져 분파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절개에 대한 의지에는 타협이 없었다. 강상은 목사는 오직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았던 고독한 의인이었다고 교회 사가는 말하기도 한다.
(참조:재건 교회 지도자 강상은 목사-허성수)

조회 수 :
4019
추천 수 :
71 / 0
등록일 :
2011.10.01
19:50:13 (*.66.219.129)
엮인글 :
http://sspch.or.kr/index.php?document_srl=2801&act=trackback&key=c3a
게시글 주소 :
http://sspch.or.kr/2801

'1' 댓글

닉슨

2013.05.09
18:09:58
(*.117.11.5)

우리교회 좋은교회 깊숙한 역사의 밑바탕을

수놓으셨든 귀 한 분들의 희생!

그리고 조금도 변형 없으신 순수 신앙그대로의 삶으로

 복음을  넓히셨든 존경받으실 선배님들의 영상을 보니

지금우리가 믿고 있는 주님의 신앙점검으로

마음이 무거워 지며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있읍니다.

 

과연 내가 지금 신앙하고 있는 믿음의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손색이 없는

 주님 기뻐하시는 제자의 삶일까?

옵션 :
:
:
:
:
List of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