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928년 1928-1945년 1945-1972년 1972-1995년 1995~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시기(1909-1928)
(1) 덕포지역(1909-19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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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덕포동 버스 정류장 인근의 중 강선대 부근 오른쪽 초가집이며 소래교회와 유사하다. <최초로 세워진 교회-황해도 소래 교회>
초라한 초가 2칸 이지만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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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한 교역자 - 예원배, 김민수(22), 박찬규(27) 전도사

부산의 복음화는 호주 선교부가 부산과 경남 지방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1909년 이전까지 사상지역에는 교회가 없었다. 이미 복음을 받았던 괘법의 장연식(상업), 삼락의 김용수(농업), 덕포의 황호연(의원), 감전의 박자연(상업) 제씨가 선교사들이 세웠던 부산 영선곡 교회(현재의 초량교회)까지 예배를 드리러 다녔다.

거리가 멀어 날씨가 고르지 못하면 주일 성수가 어려웠기 때문에 1909년 즈음하여 중간 강선대(덕포동 1동 사무소) 인근에 초가 2칸을 구입하고 예배를 드림으로 최초로 사상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때에 덕포의 김석연, 괘법의 손치만씨가 입신하였다.

(2)괘내교회(1925-1926)

이 지역에서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김용수 어른과 그 아드님이신 김장권 영수의 가족들과 부산 제2상(부산 상업 교등학교의 전신)을 나와서 금융업에 종사하던 장연식 영수가 중심이 되어서 교회를 섬겨 오던 중 예배 처소가 협소하여 조금 더 넓은 장소를 물색하였다.
1915년 사상 역과 당시 사상초등학교(명진학교)가 있던 역전 부락인 괘내(속칭 가느곡) 부락에 초가 4칸의 예배 처소와 초가 2칸의 사택을 지어 이사 하였다. 이곳의 위치는 현재 사상역 맞은 편 북쪽으로 약 300 미터 지점이다. 교인이 약 20명 정도로 성장했으며 설교는 전담 교역자가 없어 순회하는 선교사와 조사(전도사)의 도움을 받았다. 1917년에 장연식 영수가 장로로 장립 받았다.

1922년경에는 기장 교회를 섬기던 김민수 전도사가 시무했으며 그는 대연(못골), 울산 구포 교회를 섬겼다. 1920년경에 새벽 기도가 시작되었고, 주일학교는 1926년경에 문을 열었다. 장연식 장로가 개인 사업으로 인하여 영도 교회로 옮긴 후에는 김장권 영수와 정찬모 영수가 교인들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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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곡 역전 부락으로 옮겼을 때 모습 추정(ㄱ자형 예배처소와 사택)
사상역 맞은 편에서 북쪽으로 약 200미터 후방이며 쇠락된 건물이 남아있다.
(3)창날(동괘법) 교회

경부선 복선 공사로 인하여 교회가 사상 역 구내에 편입되므로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기로 하고 임시 예배 처소로 서괘법과 동괘법의 경계에 소재하던 공공건물을 임대하였다.

1927년 박찬규 전도사가 시무하던 중에 사모님이 교회당에 유치원을 개원하여 유아들을 가르쳤으며, 교회 청년들은 야학을 열어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당시에 부녀자들은 거의가 문맹이었으므로 지역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