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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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3:17,18)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저는 이 구절을 지날 때마다 시편 73편이 생각납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뻔 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사람들이 그래도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는 데에는 인과응보의 기대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결국 죄의 값을 받게 되고 죄인은 결국은 벌을 받게 된다는 그런 생각은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더욱 그렇죠.
하나님이 선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 자는 벌을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정말 답답할 때가 있잖아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벌도 받지 않고 저렇게 잘 살고 자손도 잘되고 게다가 죽을 때에도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느냐’하는 것 말입니다.
저는 이런 의문을 그냥 속으로 삭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죄인의 형통’을 보면 속이 뒤집어지는 것을 지나서 부러운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 잘 살 수 있는데 하나님을 믿으니 도무지 저렇게 불의를 저지를 수 없어’라는 마음,
그 마음을 부러워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죠.
부러워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질투한다.
즉, 속에서 불이 난다는 뜻인데요, 정말 그렇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내가 받아야 할 축복을 저 악한 자가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속에 불이 납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왜? 라고 묻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속히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항상 여호와를 경외할 수 있을까요? 시편 73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언제 해결을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쏟아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분께 원수의,
악한 자의 모든 악행을 고발하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그런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이런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너의 장래가 있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