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위트컴 장군을 아시나요?

6.25 발발 후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운명이었고 북진과 1·4후퇴를 거듭하며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밀려들었고 부산은 두 달도 채 안 된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까지 1,023일간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해방 직후 30여만 명이었던 인구는 순식간에 백만이 되고 도시기능은 마비되고 공동묘지 위에까지 판자 조각, 양철 등으로 비만 겨우 가릴 수 있는 판자촌들이 빼곡히 들어섰답니다.

그렇게 판잣집이 밀집해 있다 보니 조그만 부주의가 대형화재로 이어지기를 몇 번이어서 그때 부산을 가리켜서 불산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런데 1953년 7월 27일 오후 8시 20분경 당시 부산시 중구 영주동 17통 16반 허도영 (許道榮)의 방에서 난롯불 부주의로 발생한 화염은 시속 11.8m의 강풍으로 순식간에 그  일대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화재가 시작되지 14시간 만에 부산역을 중심으로 한 번화가의 주요 건물 및 민가 등 약 주택 3,132채가 완전히 소실되었고, 사상자가 29명, 이재민 6,000여 세대 3만여 명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때 그곳에 유엔 군수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있었던 분은 선교사를 꿈꾸던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러처드 위트컴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구제를 위하여 많은 일을 했고 군 병원을 개방해서 많은 병자를 고쳐주고 했답니다.

 

대 화재를 목격하자 위트컴은 도울 길이 어떻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징계를 각오하고 민간에 사용할 수 없는 군수물자를 직권으로 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부하들이 평소에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위트컴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이로 인하여 저가 받을 희생을 염려해서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추위에 갈 곳이 없는 이재민들을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천막촌을 건립해 주고 먹을 것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미 정부는 이 보고를 받고 위트컴을 군수물자의 무단전용죄로 군법회의에 회부했고,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서 증언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이에 감동한 의회의 의원들이 기립박수와 함께 면죄부를 주고 그는 더 많은 구호품을 안고 부산으로 돌아왔답니다.

 

이후 부산대학교, 메리놀 병원 설립, 전쟁고아를 위한 한미재단을 설립해서 고아원을 설립하는 등 수많은 이들을 위해 섬겼던 그는 한국인 부인 한묘숙여사와 함께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넷에 많이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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