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담임목사 칼럼
교회 식구 중의 한 분이 저에게 전해 준 말입니다.
‘목사님은 아내를 잃었지만, 교회 식구들은 사랑하는 사모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갑작스런 상실의 슬픔은 우리 모두에게 있고 치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상실과 치유’라는 책을 쓴 Martha Whitmore Hickman의 글을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직후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정해진 의식을 치르느라 몹시 분주하다.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고, 음식을 권해주고, 떠난 사람을 기억해주곤 하지만 모든 의식이 끝나고 친척과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홀로 남은 우리는 새롭고 낯선 땅으로 들어간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불쑥불쑥 그 사람이 생각나면서 고통이 시작되는데 어떤 날에는 사나운 파도처럼 밀려들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슬픔 가운데 머물러 있을 것이냐 거기에서 빠져나올 것이냐.
손턴 와일더는 ‘죽은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은 슬픔이 아닌 감사’라고 했다.”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참 어렵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얻은 답은 이렇습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잠언 3:6)
그리고 늘 읊조리는 말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닥치는 온갖 종류의 슬픔 중에 가장 큰 것이 사랑하는 이의 상실이지만,
이것까지도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에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의 선택을 인정하는 믿음,
그 뜻을 존중하는 가운데 가져야 할 감사의 태도를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 모든 것은 사실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분의 뜻은 완전하고 때와 방법과 목적 모두 선하십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을 선택하는 것이 속히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입니다.
잠시의 슬픔을 허락하지 않는 그런 하나님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속히 슬픔에서 벗어나서 더 슬퍼하고 기도해야 할 것은 산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울먹일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다윗은 아들이 죽기 전에는 금식했지만, 죽고 난 다음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저에게 가는 일은 있어도 저가 나에게 오는 일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먹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챙기겠다.’
상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한 기도에 힘쓰는 것이 주의 뜻임을 인정하고 감사할 일을 많이 만드는 일에 진력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