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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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조계사 정문에 성탄 트리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것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질문을 했을까요?
‘과연 나는 석탄일에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캐톨릭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사월초파일에 그런 현수막을 걸었다고 합니다.
“석탄을 맞아 한국의 모든 불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라고요.
아직 개신교에서는 이런 현수막을 건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은 개신교를 극우라고 비웃습니다.
화합의 정신이 없는 종교라고 합니다.
개신교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개신교의 시작은 1519년으로 봅니다.
그때 캐톨릭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교회의 개혁을 내건 가장 핵심은 ‘성경 중심’이었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어떤 인간 중심적인 시도에서 빠져나오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철학적인 흐름은 포스트모던주의입니다.
한때 과학적 사고가 성경을 비웃고 ‘하나님이 없다’고 했었는데 그 사조를 모던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주의는 이 세상에는 어떤 종교도 윤리, 도덕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두가 그 문화와 역사에 따라서 상대적이라고 하면서
민족과 종교간의 화해를 외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사조가 얼마나 좋은 것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편으론 성경의 내용을 모두 상대적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아주 위험한 사상입니다.
나아가서 절대적인 진리가 없으므로 절대적인 죄도 없고 절대적인 법도 없고 절대적인 선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회는 그야말로 혼돈속으로 들어갑니다.
‘내가 선이다’라고 주장하면 누구도 거기에 토를 달 수 없다면 과연 누가 누구에게 교육할 것이며 누구를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순진한 생각에 서로 인정하면서 ‘다 같이 잘 살자’라는 그런 뜻이 아니겠느냐라고 하는데
지금 이 사회가 그런 물이 들어와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압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법을 갖다 대어놔도 상대적인 잣대를 주장하고 나서니 혀를 끌끌차지만, 갈수록 그런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조계사에서 내건 현수막을 보면서 그 뒤에 있는 이 시대의 교활한 사조는 분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