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크리스마스이브에 챙길 식구

‘크리스마스이브’라는 말은 요즈음에는 자주 쓰이지 않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성탄절 전날인 12월 24일 저녁(evening)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말로는 ‘성탄 전야’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크리스마스이브가 일 년 중 가장 설레는 날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각 부서가 준비한 선물을 나누고 공연을 하며 밤늦도록 시간을 보냈고, 새벽녘에는 소고기국밥으로 허기를 달랜 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성탄 찬송을 불렀습니다.

가정의 형편에 따라 전도사님이나 구역장님의 지도에 따라 작은 소리로, 혹은 힘찬 목소리로 부르곤 했습니다.

찬송이 끝날 즈음이면 잠에서 막 깨어난 교회 식구가 눈을 비비며 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준비해 둔 작은 선물을 건네주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집은 대개 구역장님이나 장로님 댁이었는데, 따뜻한 방에서 당시에는 귀하던 과일을 대접받던 기억도 납니다.

 

제가 청년 시절 새벽송을 다니며 가장 잊히지 않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

일찍 결혼해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살던 고등부 동기의 집이었습니다.

찬송을 마치자 허름한 쪽문을 열고 나온 동기의 얼굴은 몹시 어두웠고, 작은 선물을 내미는 모습은 유난히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저를 알아보는 순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순간 크게 당황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정은 이러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교회에 잘 다니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방탕한 생활에 빠져 교회를 떠나고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날도 동기는 홀로 성탄 이브를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담임목사님과 여러 교회 식구들의 수차례 권면에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동기의 소개로 신실한 새 남편을 만나 지금은 잘살고 있지만, 전남편의 소식은 더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이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도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홀로 지내는 분들, 삶의 무게에 지친 분들, 배우자가 교회에 나오지 않아 위축된 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선물도 건네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이브는 단지 즐거운 날을 넘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챙겨야 할 식구들’을 기억하고 돌보는 복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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