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담임목사 칼럼
가인의 제물과 아벨의 제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고, 아벨의 제사는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물의 ‘종류’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성경의 시선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제물의 형태보다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과부의 두 렙돈을 귀하게 여기신 이유도 같습니다.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담아낸 그 여인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결정적인 차이 역시 여기에서 갈립니다.
가인은 ‘형식’을 바쳤고, 아벨은 ‘중심’을 드렸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이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우리 예배의 자화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예배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됩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우리를 무디게 만들 때, 예배는 ‘감격’이 아닌 ‘습관’이 되고, ‘만남’이 아닌 ‘의무’가 되며, ‘살아 있는 고백’이 아닌 ‘반복되는 의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가 아니라, 발코니에서 예배를 바라보는 관객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예배를 닮아가는가?”
가인의 형식입니까, 아벨의 진심입니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모임이 아니라,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실제적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예배는 결코 가벼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거룩한 인식’과 그분을 향한 ‘경외함’이 우리 안에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예배는 주일 한 시간의 의식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의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주일, 우리의 예배가 ‘습관’을 넘어선 ‘진심 어린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형식’이 아니라 ‘중심’이 드려지는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아벨의 그 중심이 우리 삶 전체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