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자료

1.복음의 제 1 세대(1909-1927)




<사진-1> 사상 교회 설립자 및 제직원 일동(1934년 촬영>

1.복음의 제 1 세대(1909-1927)
*교역자-예 원배, 김 주관, 박 성태, 양 희식, 김 민수
*초대 교인-장 연식, 김 석현, 황 호연, 김 용수, 박 자연, 손 치만, 박 도애 제씨의 가족

(1) 덕포 교회(1909-1915)
(교회 설립 이전) 1909년 이전에 이미 이 지역에 선교사가 순회하여 복음을 전한 흔적이 전해진다. 덕포에 거주하던 초대 교인 김 석현 씨(신 복순 권사의 시부)의 가족에 의하면 신 권사의 시댁을 마을 사람들이 '예배당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순회 선교사가 와병 중이던 김석현 씨를 방문하였으며 마을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인근에 살던 황 호연씨도 마을 의원으로서 일찍부터 선교사들과 병원이 있던 초량의 영선현에 출입했다고 한다. 가포(현재 삼락동)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김 용수 씨와 감전에 거주하면서 상업에 종사하던 박 자연 씨도 영선현 교회에 출석했다. 괘법에 살던 장 연식 영수는 영선현 교회 출신으로서 이미 신앙의 연조가 깊었다. 부산 제 2상(부산 상고 전신)을 졸업하고 금융업에 종사하였으며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에도 여전히 영선현 교회로 출석하고 있었다.
(덕포 교회) 영선현 교회에서 만났던 사상 지역의 교우들이 1909년에 이르러 덕포동 중 강선대 부근에 초가 2칸을 마련하여 예배 처소를 마련했다. 장 연식 영수를 비롯하여 김 석현, 황 호연, 김 용수, 박 자연 씨가 집사로서 교회를 섬겼으며 양산에서 이사한 손 치만 씨가 장 영수의 전도로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장 영수의 처제가 되는 박 도애 씨 (방문수 장로의 장모)도 일찍부터 복음을 받아 들였다.
인근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1894년에 김해읍 교회, 1905년에 기장 교회, 동래 읍 교회, 1906년에 양산읍 교회, 울산 병영 교회, 구포 교회가 세워졌고 1907년에 대저동에 위치한 대지 교회가 설립되었다.

(2) 역전 부락 가느곡(괘내) 교회(1915-1927)
(가느곡 마을) 가느곡 역전 부락은 정식 명칭이 괘내이며 괘법에 속한 자연 부락으로 사상역 주변의 마을 뜻하는 속칭이다. 1740년 영조 16년에 동래부 관할 구역으로 사천면에 속했으며, 상단과 하단을 구분하여 상단인 사상면은 괘내리에 면 소무소를 두었다. 1914년 부군 폐합으로 동래 군으로 속했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남북으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일찍부터 한양(서울)에 이르는 국도가 마을을 통과했다. 1905년에 경부선 철도가 완공되어 개통되고 1921년에 사상역이 간이 사업소가 개소되면서 역전부락이라고 불었다. 이미 1918년에 마을 유지들이 출연하여 초등 학교에 준하는 ‘사립 명진 학교’가 세워져 1922년에 교사를 덕포동 현재 위치로 옮길 때까지 사상역 부근에 있었다. 당시에 가느곡 부락은 사상면의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초대 장로 장립) 1915년 사상역 맞은편, 괘법동 468번지에 남향으로 초가 4칸의 예배당과  사택 2칸을 기역자로 지었으며 장 연식 영수가 1918년에 초대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1891년 호주 선교부의 부산진 지부의 관할이 부산, 초량일원, 동래, 울산, 언양, 양산, 김해, 밀양, 창영, 기장, 울릉도 일원이었기 때문에 이 지부에 속한 호주 선교사가 연중 몇 차례씩 방문하여 세례와 성찬 예식을 베풀었으며 선교부의 보조를 받는 순회 전도사가 인근 지역의 여러 교회를 돌아가며 돌보았다. 김 주관, 박 성태, 양 희석, 김 민수 조사가 순회 전도사로서 사역했으며 호주 선교부의 예 원배 선교사의 행적을 기억하고 있다.
(새벽 기도) 가느곡 교회는 예배당과 더불어 사택이 있어 관리 집사가 상주하여 교회를 돌보고 청소와 예배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새벽 기도회를 드리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새벽 기도는 1907년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대 부흥 운동과 1909년 백만 명 구령 운동 등 부흥 운동의 열기를 타고 전국 교회로 확산되었으며 1910년대에 접어들어 새벽 기도회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인 기도 모임으로 정착되면서 널리 시행되었다.
(주일 학교) 경제적으로 핍절하고 나라를 잃은 절망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관한 관심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1918년에 마을 유지들이 출연하여 사상 역 부근에 지금의 초등학교에 준하는 ‘사립 명진 학교’를 세웠으나 그 재정적 지원이 지속되지 못하여 불과 1-2명에 불과한 교사의 월급도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다.(.1919.8.16 일자 매일신보 '사립 명진 학교' 기사) 물론 한학을 가르치는 마을 서당이 있었지만 특정한 자녀들 이외에는 갈 수가 없었다. 주일 학교는 여러모로 보아 형식을 갖춘 체계적인 학교였으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었기 때문에 주일 학교가 부흥했다.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1905년 선교사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를 조직하면서 종교교육을 위해 주일학교 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처음에는 소아회(小兒會)라고 불렀고 공과 책도 발간했다. 주일학교 위원회는 1911년 4월 세계 주일학교 연합회에서 파송한 브라운(Brown,F.H.)의 자문을 받아 세계기구와 연결을 맺고 조선 주일학교 연합회로 발전하였다. 주일 학교는 성경 공부와 더불어 신문화를 소개하는 창구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기 때문에 교회의 형편에 따라 평일에도 운영하는 학당으로, 마침내 정식 학교(mission school)로 발전하여 초대 교회는 민족이 암울한 시기에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 되었다.
(야학과 계몽운동) 교회 청년들이 교회 인근 부락의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야학을 열어 한글을 가르쳤다. 야학은 문맹률이 높던 당시 지역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쳐 전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10년 나라를 잃은 후에 일제는 일본어를 국어로 사용하도록 강제하였기 때문에 가뜩이나 문맹률이 높았던 서민들에게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어 있었다.
1919년 3 · 1 운동이후에 다소간 완화된 정치적 분위로 인하여 뜻있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예배당이나 마을 회관에서 농촌 계몽의 일환으로 야학이 확산 되었다. 교회가 독립 운동과 계몽 운동의 그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과 교회학교를 통해서 개화된 청년들과, 회집이 가능한 예배당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며 개 교회가 속한 노회와 총회를 통하여 전국을 망라하는 조직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구호 아래 교회 청년들은 농사일을 끝낸 밤 시간에 문맹자를 위한 한글 교육을  실시하였다.
(교회 이전) 경부선이 1905년 5월에 개통되어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복선화를 계획하고 사상 역구내가 확장되므로 교회 부지가 이에 편입되어 이전 보상을 받아 서괘법 벼락산 기슭에 교회를 건축했다. 서괘법은 구포에서 사상을 거쳐 부산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고 서쪽으로 낙동강 퇴적 평야와 접한 너른 평지가 있었기 때문에 1922년경에 사상 면사무소와 초등학교가 인접한 덕포 마을로 이전하여 신축했으며 관공서와 더불어 닷새마다 오일장이 열렸기 때문에 사상 면 주민들이 ‘사상’ 간다고 하면 이 지역을 가리켰으며 시장 부근의 지역을 시장 통이라고 불렀다. 서 괘법 마을이 지리적으로 사상면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1.사상 지역사
1788년 사상지역 제방공사(동래부사-혜민비)/1896년 부산부에 편입/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구포 역 영업 시작/1914년 부·군 폐합으로 동래군 사상면/1918년 사상 명진 학교(사상 초등학교) 개교/1921년 사상역 영업시작/1933년 구포 다리 준공/1935년 낙동강 제방 완공/1963부산시 편입/1968 사상 공단 조성(75년에 완공)
2.선교사의 입국과 의료 선교
1889년 호주 데이비스목사 입국하여 이듬해 병사하게 되자 3인의 선교사(맥케이 부부, 멘지 양, 페리 양)가 부산에 도착했다.
영선현 교회(현 초량 교회)는 배위량(William Martyn Baird 1862~1931) 선교사가 북 장로회 선교부의 파송으로 1891년 부인과 함께 부산에 도착하여 선교 활동을 하면서 1892년 11월에 영선현에 설립했다. 이듬해에 같은 선교부에서 파송한 의료 선교사 어을빈(charles H. Irvin) 부부는 일본국 일본 요코하마에서 부산에 입국하여 부산 경남 지방의 최초 병원이라 할 수 있는 제킨슨 기념 병원(Junkin Memorial Hospital)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의료 선교를 열었으며 감만동에 나환자를 위한 시설인 성애원을 열어 나환자를 위한 사역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초대 교인들의 영선현 교회는 복음과 의료의 중심지였으며 의료의 시혜를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3.선교 구역 분활과 네비우스 선교 방법
각국에서 파송된 선교기관들이 중복된 노력이나 필요 이상의 경쟁을 피하고 우호적이며 효율적인 선교를 위하여 교파별 선교지를 분할하게 되었는데 부산 경남 지방은 호주 선교부가 맡았으며 교회를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네비우스 선교 방법의 원칙을 따랐다. 네비우스 선교방법은 교회의 자립을 목표로 자립선교, 자립정치, 자립보급, 교회간의 협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교사의 숫자는 적었고 전도할 지역은 너무 멀고 험하였기 때문에 선교사는 조사(협조하는 사람)와 매서인(성경과 종교 서적)을 대동했다. 교회를 순회하며 방문하는 교회에서 성찬식과 세례식을 거행했으며 여성 선교사들은 남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안방에까지 들어가서 전도, 교육, 상담 등을 하며 규방 전도에 힘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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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내규위-교인 생활 규범과 교회 내규 201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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