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의 10시 방향에 교회건물 기와지붕의 처마끝이 보인다.
설립25주년을 기념하며 유명 부흥강사이셨던 강상은목사를 초빙하여 인근의 엄궁, 모라, 구포, 김해등지의 성도들이 함께 부흥회로 모인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교회연혁에 의하면 본 교회 건물은 1928년 괘법동 266번지 기와 목조건물로 준공되었다고 한다.
교회 뒤쪽의 산은 회산(벼락산)자락으로 당시의 사상은 면사무소, 학교, 교회, 시장통의 중심가를 벗어나면 일부 논과 밭이 있었고, 지금의 교회앞으로 맑은 물이 흘러 가는 냇가가 있었으며 숲이 울창한 산으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동네였다.
특히 지금의 유원아파트 뒤쪽의 덕포동쪽 계곡은 마치 지리산의 조그만 계곡에 비교될 만큼 깊었고,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계곡에는 큰 바위가 많았던 꿈에도 보고싶은 그리운 풍경들이다.
필자도 어릴 때의 기억이 희미하게 나지만, 이 건물은 성도들이 대밭교회라고 호칭했으며, 70년대 회산의 개발로 헐리기전까지 유지되었으며 교회 내부의 모습은 예배외에도 어린이들이 율동이나 게임을 하기위한 공간으로 큰 원이 그려 진 짙은 색의 마루바닥이었다.
그 마루바닥에서 믿음의 선조들은 일제강점하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한국전쟁 당시에는 국가의 평안과 전장에 나간 젊은 자식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으며 기도하였음을 들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러한 선조들의 고난속의 기도와 희생의 씨뿌림이 있었던 결과이며, 우리 후손들이 그 결실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전경은 또 다른 자료사진을 통하여 볼 수 있다.
1951년경 총회(통합)와 고려파가 분리되면서, 총회측이 본 교회건물과 교회의 기존예산, 기존의 소유하였던 토지의 소유권을 가지고 남았으며, 고신측은 분리되어 현재 사상시장입구 사거리 인근에(괘법동 822번지) 있던 구포 주재소장(경찰서장) 관사를 차지하여 사상중앙교회로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사진의 앞줄 우측 끝에 정해동조사, 좌측에 아기 안고 앉은 분은 정찬모영수, 좌측 안경 쓴 분은 부흥회 강사이며 재건교회 설립을 주도하셨던 강상은목사, 좌측에 설립자 장연식장로, 좌측에 설립자 박자연집사(추정), 좌측에 설립자 김용수집사의 차남 김장권영수, 좌측에 설립자 김용수의 부인 이금년집사, 좌측에 설립자 황호연의 부인 김학임집사이다.
개인적으로 필자 가문의 보유 사진임으로 보이는 가족을 설명드린다.
가운데 모자를 쓴 저희 할아버지 김장권영수,좌측 증조모 이금년집사, 할아버지 앞에 선 아이는 한국전쟁때 19세의 나이로 참전하여 평안도 박천에서 중공군의 수류탄에 산화 한 삼촌 김봉수, 옆에 앉은 아이가 저희 선친 김봉찬집사, 중앙의 좌측에 유난히 얼굴이 까만 분이 할머니 박재순집사이다.
중앙의 우측에 아이 안고 선 분이 방문수장로 그 옆이 손일용장로
그 외, 여러 어른들께서 이 귀중한 사진을 보시고 인물 설명을 해 주신 것을 귀하게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