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자료

메일에 답하며-교회는 영원한데 사람은 잠시 머물다 간다.



샬롬 !

1.
해방 전후로 하여 교회 형편과 특별히 중앙 교회(고신)의 사정에 대해서
민 장로님께서 주신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회사를 읽다보면 교회는 영원하며 우리는 잠시 머물다가 갑니다.
되돌아보면 한국 교회도 그러하고 우리 자신도 연약한 질그릇에 불과 합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회복 시켜 주십니다.

2..
장로님께서도 잘 모르실 저의 가족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손치만/1874-1932)께서 부산에서 일을 보시고 집(물금면 화제)으로 가는 길에
들린 사상에서 장연식 영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 가족들이 길손에게 베푸는 따뜻한 환대를 받고
복음을 접했으며 신앙 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1910년에 사상으로 이사 오셨습니다.

가느곡 교회(1915-27년)가 완공되자 할아버지께서는 사택으로
가솔을 옮겨 예배당을 돌보고 순회 전도사(조사)를 섬겼었는데 예수밖에 몰랐던
외골수 신앙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순회 조사가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사역을 해야 하니
방문 교회는 그분들의 침식도 제공해야 했읍니다.
그와 더불어 예배당도 청소하고 새벽 기도와 예배 준비를 위해서
교회를 돌볼 사람이 필요으므로. 할아버지께서 그 일을 맡아 하셨습니다.
그러한 섬김의 정신이 아버지에게도 이어져 90평생을 교회 지근에서
교회 일을 내일처럼 섬겼던 순박하고 실천적인 초대 교인이었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인식이 형님과 제 누나들이 3-4살 터울로 총총이
사상 초등학교 26회/30회/33회/36회/39회/42화/45회...로 이어지고 그위로
아버지가 1908년생/손일호 장로가 10년생/손성호 장로가 20년생/그 사이에 고모님.

특히 손성호 장로(1920)는 본적이 괘법동 469번지인데 가느곡 예배당이 출생지입니다.
모든 가족들이 대를 이어오며 100년이 넘도록 사상 교회 마당을 밟으며
자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언급하신 저의 삼촌 손성호 장로의 군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인 손일호 작은 아버지가 20대(1930년대)에 일본에 먼저 가셨고
아우인 손성호 작은 아버지도 잠시 일본 가셨다가 해방이 되자
이내 국군 경비대의 군악대 창설 요원으로 사병 입대 하였습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이미 3사단 28년대에 배속된 초급 지휘관으로서
국군이 북진 시에 38 선을 가장 먼저 돌파한 부대의 소대장으로
화랑무공 훈장을 받았으며 그날을 기념해서 국군의 날이 되었습니다.
포항 안강 전투에서도 무공을 세워 화랑무공 훈장을 받았습니다.
삼촌이 참전 중, 작은 어머니께서 우리집에 기거했습니다.

전쟁후 공비 토벌이 마칠 때까지 야전으로이어지는 군생활을 마감하고
대구 경산 지방의 선교사들이 경영하는 과수원에서 사역을 돕다가
1960년 초에 다시 사상 교회로 이사와서 사상 교회를 섬기다가
양산으로 이사하여 양산 교회 원로 장로로 아직 생존하고 있습니다.

4.
저의 가족이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아버지의 형제 3남 1녀와 우리 8 남매가
몇살을 터울로 하여 교회 역사와 함께 쉼없이 머물렀던 사상 교회는
영혼의 고향이고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사랑하고 애착을 가진다고 해서 그 기록이 편견에 치우치고
특정한 몇몇 개개인의 공적과 칭송에 치우친다면 교회사로서 가치를 잃습니다.
복음서가 가르치는대로, 은밀한 중에 보시는 주님의 시선이 머물러야 합니다.

5.
해방 이전, 특히 해방 이전의 기록이 불실한대 간략하게 기술할 예정입니다.
다행스럽게도 1970 년대 발족했던 사상 교회 신우회라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사상 교회의 오래된 교우들(1937년 촬영 사진 인물)과 더불어 이들과 비교적
내왕이 잦은 여러 어른들의 친목 모임이었습니다.

이곳 출신으로서 외지에 나가있는 당시 50-60대의 동년배로서 백흥기/김봉조
이재수/손일호/손성호/지명백 등 제씨들이 이곳의 교우들과 연중 몇 차례씩 만나
친목을 도모하면서 당시의 이야기와 그 시절의 교회 형편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75주년 행사 때에도 초청을 받아 참석하셨습니다.
이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당시의 모습들이 좀 더 또렷하게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6.
세월이 훨- 지나갑니다.
우리 교회의 교회사는 사도행전 29장에 해당됩니다.
유태인들의 세마 교육이 바로 이러한 선민잇기 작업입니다.

새 시대를 꿈꾸며 비젼관(100주년 기념관)이 곧 착수될 것이며
비젼관에 역사관이 만들어 질 것이며 때를 맞추어 교회사도 발간될 것입니다.
계속 관심을 바라오며 좋은 자료들을 보내 주시면 잘 보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송 메일에서 字句 수정>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petersohn" <sohnks@hanmail.net>
받는사람 : "민상식" <minss153@naver.com>
날짜: 2013년 2월 07일 목요일, 00시 41분 07초 +0900

제목: RE: 사상교회 역사자료 2013년2월6일
감사합니다ㅡ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김인구 장로님의 전언
따뜻해지면 류상곤 형과 한번 만나도록 합시다.
강건하소서ㅡ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민상식 <minss153@naver.com>
받는사람 : kikomc@hanmail.net,손규식 <sohnks@hanmail.net>
날짜: 2013년 2월 06일 수요일, 22시 24분 13초 +0900
제목: 사상교회 역사자료 2013년2월6일

오랫만에 사상교회 역사 자료란에 들어가 보았는데 ...
100년사 는 언제쯤 햋빛을 보려는지...
손규식 장로와 김인구 장로가 마음고생이 심하겠네.
어떻든 여러모로 생각을 하고 충분한 검정을 거처
100년사 다운 역사책이 나오길 바라네.

옛날 사진들을 보니 1937년도 사진은 어릴때 뵈었든
어른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함자를 잘못 기재한 부분이 있고. ..그래서 시정 부분 지적 하려고 하니
참고 허시기바라네.

(3) 52번 최대연 전도사 사진
최대연 전도사 사상교회 시무기간 1952년~1957. 사상교회 사임하고 경남서남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필자는 어느교회인지는 모름.
1958년도에 영도 제2교회 시무 당시 필자는 최대연 목사를 만났음.
1959년10월~1963년8월 까지 거제교회시무.

(4) 46번 교회분리후 사상교회 모습과 교사들 사진
사진촬영시기는 1951년도임
왼쪽부터 방임영(방문수장로 장녀) 방재영(방장로 차녀) 김인숙. 구근숙. 이영창
경사 의 부인(이름은기억안남) 길봉석 경위 의 부인(이름기억안남) --필자가 쓴 단행본
'나의 아버지 민영석 목사' P63- 37항 분립후 첫교역자 허내봉 전도사란에 7째줄에 기록
된 분들임- 뒤에 서 있는 남자청년은 피란온 원씨 성을 가진 분인데 이경조씨 집 부엌
방에서 살았음.

(4 ) 44번 민상식 유년주일학교 졸업장
당시 유년주일학교 졸업은 중학교 2학년때 졸업하였음
초등학교 졸업은 1949년도 7월에 29회로 졸업.
1950년도 3월에 학제 개편 되었음. 신학기가 3월로 되었음.

(5) 34번 1927~1964
1951년도 교회분립 란에
첫교역자 최내봉 이 아니고 허내봉 전도사이고
두번째 교역자 최대현 이 아니고 최대연 전도사임.

( 복음의 제2세대) 1937년 사진에
1) 백홍기 가 아니고 백영기 목사이며 백영숙 권사의 오빠임.
2) 민영석목사 장남 민형식 아니고 민상식 으로 시정요.
3) 정해동 집사 박찬규 집사 라고 하였는데 교역을 당시 그만 두었지만
정해동 조사 박찬규 조사라고 호칭 하였음.
4) 허증수 집사 라고 하였는데 허선생으로 호칭 하였음. 집사도 아니였음.
5) 6.25 전사자 중 김덕국 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형 김덕만 이가 전사자임.
김덕국은 몇년 전에도 대구에 생존 하였음.
6) 전사자 중 이경조씨의 두 아들의 이름은 기록 하지 않았는데 필자가 차남의 이름은
알지만 장남의 이름을 몰라 그의 가족들에게 문의를 하니 이상하게 거부반응을 일으켜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7) 참전자 귀향자 중 손성호는 필자가 기록하지 않았는데 다른 분이 빠지고 기록되어
있는데... 손성호 씨는 필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정때 일본에서 거주하였고 1943년경 한국으로 휴가 나와서 당시 형님 되시는 손일용 집사(장로) 댁에서 지나셨는데 당시에는 그의 어머니께서 생존 하셨다. 지금도 기억하고있는데 내일이면 일본으로 떠난다고 짐을 챙기는 형수 되시는 손일용 장로 부인이 이불보 같은 큰 보자기를 마당에 펴 두고 떡 이랑 많은 먹을것을 옷 하고 차고 차곡 쌓으며 짐을 포장 하든 일, 어린 우리들은 둘러서서 구경을 하였다. 그 일이 어제 일 같은데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손성호씨는 해방후에는 사상에 오지도 않았고 사상에 거주 하지도 않았다.
물론 고향은 사상이겠지만... 6.25당시 참전사실도 필자는 전연 모른다. 당시에는
거주지에서 입대 하였기 때문이다. 지수광 장로 부친은 당시 나이가 많은 편이라 영장
발부도 되지 않았는데 길 가다가 붙들려 입대 하였다는 말을 들은것 같다. 사실여부는
분명치 않으나 ...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손성호씨는 사상교인이 아니므로 이름을
넣지 않았으므로 착오 없으시기를 바란다. 본인이 생존 하시므로 확인 하여도 된다.

6.25당시 사상교인의 전사자 4명 --김봉수. 김덕만. 이경조씨 두 아들.
6.25 귀향자 10명 -- 김경원. 김정규. 김성규. 김봉찬. 김성국. 강호태. 방태영.
손인식. 이대열. 강창수.

오늘은 우선 이정도로 하고 ... 수고들 하세요. 민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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