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칼럼] 교회와 정치

이스라엘은 신정정치였기 때문에 정교일치였습니다. 그러기에 선지자들은 정치인들의 부패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꾸짖고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기독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며 세상 정치인들의 핍박에 대해서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정치에 대해서는 세속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는 정교분리의 자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교회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정치에 여러 방면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에 휘말린 교회는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따라 교회는 정치인들에게 약점을 잡히면서 선지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국가의 잘못된 정책과 부패로 사회적인 약자들이 더 고통을 받는데 대하여 교회가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자 남미에서부터 민중 신학이 일어났는데 교회가 약자들을 위하여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에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일반교회에까지 큰 영향은 미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위에 있는 권세들(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하면서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이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른다고 하고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롬13:1~7) 바울이 말하는 권세들은 로마의 권세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당시의 권세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냐에 상관없이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에 가까운 늬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그렇게 복종해야 할까요?


구소련 시절 러시안 침례교회 성도들이 당한 핍박은 이루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국가의 모든 요구에 대해서 복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종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을 버리라는 것과 예배로 모이는 것을 중단하라는 것에는 불복종했습니다. 그에 따라 예배 장소를 급습한 공산당원들에게 총과 칼에 맞아 죽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왜 그토록 예배를 중요시 했을까요? 예배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동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


교회는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정치인들을 배출하는데 적극적이어야 하지만, 국가의 제도와 관련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복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믿음이나 예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는 목숨을 걸더라도 불복종해야 합니다. 국가권력이 신앙을 버리라고 하거나 교회의 예배를 금지하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불복종하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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