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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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부지런함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새벽임을 잘 표현한 내용이었죠.
오래전 한강 변에 있는 아파트에서 보름간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에 내려다본 한강 변 88고속도로가 벌써 차량으로 길게 나래비를 선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다녀 본 제 눈으로 볼 때 새벽에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민족은 한민족이 거의 유일합니다.
새벽이라는 말의 한자는 ‘효’라고 하는데 그 의미가 참 좋습니다. 한자의 모양은 땅에서 해가 뜨는 장면이지만, 뜻은 ‘깨닫다’, ‘이해하다’라고 합니다. 단순히 해가 뜨는 시간이 아니라 깨닫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죠. 그저 남보다 일찍 몸을 움직여서 벌이를 좀 더 낫게 한다는 그런 것보다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기를 바라는 그런 시간이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이 시간에 정성을 들여서 기원을 드렸는데 이 땅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들어온 이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기독교 역사상 ‘참 별나다’라는 말을 들어가며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 바로 새벽기도회입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57:8)는 시인의 표현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나오는 내용입니다.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는 요란한 찬양을 새벽부터 하겠다는, 그런 뜻이죠.
그래서 저는 우리 한민족 그리스도인을 새벽인(曉人)이라고 하렵니다.
새벽인인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새벽을 이끄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 한날 이 땅의 평안과 새롭게 함과 소망을 하늘로부터 이끌어내는 하늘과 땅을 잇는 중재자요 제사장입니다. 비록 전파를 타거나 뉴스거리가 되지는 않지만, 남모르게 이 하루를 이끌어가는 그림자 세계정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