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쯤일
것입니다.
아내의
친구가 저와 아내를 위해서 보험을 하나 해 주려고 했습니다. 친구는 사람이 언제 질병이나 재앙을 만나게 될지 모르니 아무 말
말고 그냥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험회사에서 나온 간호사가 먼저 저의 건강을
진단하고 설문을 작성해 갔습니다. 일주일 뒤에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보험대상이 안된다는 겁니다.
제가
무슨 질병이 있어서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제가 있는 곳이 아주 위험한 곳이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주변에서 여러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던
아프가니스탄 선교사였거든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 코로나 19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망자가 그리 많지 않아도 미국 같은 곳에선 벌써 18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엎드러진다(7절)’는
말이 실감 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대한민국이 더 야단인 것 같습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있는 동안 우리나라에 대해서
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그렇게 인권에 대해서 대단한 것도 아닌데 군인이 파병 가서 한 사람 죽었다고 하면 난리고
단기선교 가서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또 난리였습니다. 그런 데 비해서 미국은 병사가 수천 명이 죽어도 선교사들이 수백
명이 죽어 나가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저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재앙의 때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들(1절)’입니다.
우리는
‘지존자를 우리의 거처로 삼은 자들(9절)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막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능히 건지시는
분이고 재앙이 가까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오늘, 이 시편에서 전염병에 대한 것을 두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3,6절)입니다.
특별히
심한,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 도가 심하고 이미 영적으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 지금 그들에게는 마땅히 피할 곳도 없고 닥쳐오는 재앙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며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2절)
그는
그의 날개로 나를 덮을 것이요 나의 손방패가 되신다(4절)
그러므로
이렇게 선포합시다.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6절)
죽음이
우리를 결코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우리의 부활로 삼고 있는 우리는 ’죽어도 살겠고‘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시편
91편
말씀으로 두려움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