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 평가 기준 하나
(잠언 14:31)
내 신앙이 바른지 그른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오늘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 하나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가난한 자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그 신앙이 바른지 그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가난한 자를 학대하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학대한다는 것은 속여서 무엇을 빼앗는다 혹은 차별하고 무시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가난한 자를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들은 교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들이죠. ‘가난은 저주고 부는 축복이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는 교회일수록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보면 교회가 가난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를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가난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왜 가난해졌을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본인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브히지트‘ 교수는 ‘게으름과 어리석음, 무능이 빈곤을 부른다는 말은 잘못되었다’고 했습니다.
가난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자연환경이 그렇게 만들기도 하고 국가의 시스템이나 지도자의 성향에 따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지병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2. 가난한 자 역시 하나님이 지으시고 사랑하는 이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을 뭐라고 합니까?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를 지으신’ 말을 넣어 강조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어느 선생님이 말을 잘 안 듣는 학생을 향하여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너는 조물주의 실패작이야’ 이런 말이 바로 학대하는 것이죠. 가난하든 부자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든 거의 노예 상태에 있는 자든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이 지으신 소중한 자입니다.
3.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태도야말로 바른 신앙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공감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공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낮은 자리로 내려 오셨고 가난한 자를 위하여 자신을 가난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자의 자리로 내려와야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잣대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