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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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5:21~22)
요즈음은 ‘원수를 갚는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 그런 말을 했다가는 협박죄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원수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도 얼마나 원수 맺는 일이 많은지요.
말은 하지 않지만,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다가 결국은 큰 사고를 저지르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며칠 전에도 층간 소음으로 큰 사고가 났습니다.
보통은 당한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지만, 가해자 역시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겠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0에 육체의 일의 목록에 보면 ‘원수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살다 보면 원수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원수를 맺는 것은 죄가 되고 더 큰 죄의 씨앗이 됩니다.
원수를 맺지 않고 진정으로 원수를 이기는 방법을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신 내용과 거의 비슷하죠.
원수를 제대로 갚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원수의 필요를 채워주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라고 했습니다.
원수의 필요를 채워주면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집트의 문화적인 습관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누가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할 때 머리에 헝겊으로 두껍게 덮고 난 다음에 화로와 같은 것 안에 숯을 넣고 일정한 길거리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말은 원수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그 사람을 회개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원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라든지 원수의 죄를 드러내어서 벌을 받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으로는 그 사람을 회개로 이끌 수 없습니다.
물론 상대방의 필요가 채워질 때 두 가지 행동을 보이겠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회개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이를 악용하는 그런 악인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악인을 어떻게 하십니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원수를 갚겠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가질 생각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원수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