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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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길을 피하고 의인의 길을 사모하라 (잠언 4:14-19)
지혜자가 악인의 길에 대해서 말합니다.
‘악한 자들의 길에 발도 들여놓지 마라, 그 길을 다니지 마라, 그 길을 피하라, 서지 마라. 그 길에서 돌이켜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울타리를 쳐도 이 정도면 정말 대단합니다. 이중 삼중이 아니라 다섯 울타리를 쳐 놓고 있습니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말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마음에 악한 면이 있습니다. 악한 것은 매력이 있습니다. 맛보고 싶고 보기에도 좋고 나를 좀 더 성숙하게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 악한 면에 조금이라도 자극을 주면 그것이 일어나서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을 처음부터 차단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끌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악한 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선을 행하려는 원함은 있으나 내 속에 있는 죄가 나를 사로잡아서 나를 악한 길에 들어서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이 이렇습니다. ‘내 속에는 선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나를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가 악한 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반면에 의인의 길은 어떻습니까?
그냥 의인의 길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의인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면 막연해집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리키는 바를 좀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의인이라고 하죠? 성경에 보면 아벨, 룻, 노아, 아리마대 사람 요셉, 마리아의 남편 요셉 등등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에 대해서 의인이라고 하는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구약, 신약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다 부족한 면이 있었다는 말이죠. 이들의 삶을 본보기로 따르는 것도 의인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족 하지 않은 그런 의인의 길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길이요’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길을 따르는 것이 바로 의인의 길로 가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악인의 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오직 예수의 길만 집중한다.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