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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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사진으로 젊은 시절 사상교회 전도사로 잠간 시무하셨고 1970년대 주일학교 교사로 많은 사역을 섬기셨고, 이 후 김해로 이주하시고 경남 사천에서 거주하셨던 김정규장로님께서 소장하시는 사진이다.
개인적으로 그 어머니이신 성호일권사님이 필자의 산파역할을 하셨다.
1949년은 교회가 분리되기 전이었다.
교회설립 41년째가 되는 해에 야외예배로 모였다.
일일이 숫자를 확인해 보니 대략 153명 정도이다.
어린이가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교회는 아이들의 선진 배움터요 당시 생활환경으로는 맛볼수 없는 좋은 놀이터였다.
집집마다 아이들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이 장소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60~70년대 사상교회가 주로 야외예배를 갔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신라대 아래에 있는 능인사 곁으로는 제법 깊은 계곡이 있었고 그 계곡의 건너편에 산길에서 가까운 숲속에 약 2~300평 정도의 넓은 장소에 잔디가 자라고 있어서 율동하고 게임을 하기가 적당한 장소였다.
(현재는 사상의 공원으로 개발되어 있다)
산위에서 바라보면 낙동강하구의 드넓은 들판 풍경이 한 눈에 들어 오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교회 뿐만 아니라 사상초등학교 저학년의 소풍장소로도 자주 이용되었다.
이 곳에 올라가서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을 목청껏 합창하였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 옆의 계곡에는 지금의 신라대 터에 있었던 큰 못에서 맑은 물이 많이 유입되어서 지역 주민의 자연목욕탕이었으며,
계곡의 물이 내를 형성하여 교회앞을 지나서 낙동강지류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 길이 복개가 되어서 차도로 이용되고 있다.
70년대 이전에는 사상지역의 급수시설은 동네 우물, 혹 은, 한 창 설치되던 수동식 펌프가 거의 주를 이루었지만 70년도 초 부터 이재수장로가 사상면 수리조합장을 역임하였고
자본을 준비하면서 덕포못을 이용하여 사상지역에 수도시설을 보급해서 수도물을 이용하게 되었다
인물 설명은 이자리에 중학생의 모습으로 앉아있는 민상식장로님께서 일일이 기록해 주신것을 보관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도 어머니 구근숙권사와 최양순권사, 황학년권사의 신혼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고모부이신 이재수장로, 방문수, 손일용, 김성규, 김정규, 김종규장로님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사진의 중요점)
1.교회가 총회와 고려파로 분리되기전 마지막사진
2.아동으로부터 노인들까지 모든 성도들 참여
3.한국전쟁전의 모습으로 일부 외부인의 유입이 있었지만 순수한 사상교회의 출석교인수를 확인할 수 있다.
4.1950년 이후의 사진은 이미 교회가 분리되어서 각기 촬영한 모습으로 볼 수 있고 고신측은 경찰가족과 피난민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총회측은 당시 회산지역에 주둔하던 포병부대 장병들과 김해의 공군부대 장병들이 일부 출석하였다.
(민상식장로, 이경향권사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