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Album

일제의 소개령으로 인한 청년들의 양산 집단농장 이주(1943~44년)

1943~4. 일부성도 양산집단농장 일시이주.jpg

 

(사진제공:민상식장로)

1943~1944년경 교회의 젊은 성도들이 사상의 재산을 정리하고 양산 하북면 백록리로 이주하였다.

 

민상식장로와 김정규장로의 증언에 의하면

이주 배경

1.일제 말기의 징집과 수탈을 면하기 위함

2.덴마크 국이 그룬트비와 달가스의 농업혁명으로 부국이 된 사실에 영향받음

3.춘원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등 농촌계몽운동의 영향

4.사도행전의 공동체생활의 실천

 

인물소개

앞줄 좌로부터 이영락. 손일용 손일호

뒷줄 좌로부터 정해동 김길준 박찬규

그 외 이주자: 방문수 류영흥 윤갑동 허증수

 

이주 교인들은 사상의 재산을 정리하고 그 곳의 토지를 구입하여 각기 집을 짓고 종묘등 농사를 하였다.

교회를 떠나서 신앙적으로 다소 자유분방한 소식을 들었다. (김정규장로)

민영석집사는 일제의 감시를 당함으로 만일의 경우 탈주하기 쉽게 가장 구석진 곳에 터를 잡았다.(민상식장로)

해방 후 사상으로 귀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나 재산을 모두 현지에 투자하였음으로 사상에 온 후에는 대부분 상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기도의 어머니들(1960년대)

한상동목사 와 김봉조장로(1960년 9월 9일)

사상교회 유치원 졸업사진(1949년)

최대연전도사 고려신학교 졸업기념(1958년)

설립교인 김용수의 장손 김봉조의 장로장립(1954년 범천교회 추정)

사상교회 등반예배기념(1952년 4월 27일)

사상중앙교회(고려파/적산건물)를 배경으로 교사들

주일학교 교사들(1950년대 초)

일제의 소개령으로 인한 청년들의 양산 집단농장 이주(1943~44년)

사상 유년주일학교 졸업장(1950년 6월 4일)

설립자 김용수부인 장례사진(1938년 12월 17일)

사상교회 야외예배 기념(1949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