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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중앙교회(고려파/적산건물)를 배경으로 교사들

1950년대 초(추정).적산건물교회와 유년주일학교 교사들(구근숙.김인숙.방재영..).jpg

 

1950년대 초 한국전쟁중

교회건물을 배경으로 주일학교 교사들과 피난 온 분들

 

교회연혁의 기록에 의하면 1951년 한상동목사가 일제강점하 신사참배건으로 경남노회로 부터 축출되어 고려신학교를 설립하고 이 후 합동과 재분리 과정으로 고려파로 법통노회(고신)를 설립함으로 영남지역의 많은 교회들이 분열되는 상황이 되었다.

사상교회도 총회측은 기존의 대밭교회(괘법동 266번지)건물과 당시까지의 예산, 교회 소유의 토지를 소유하고, 고신측은 시장통(괘법동 822번지)의 구포주재소장의 관사(적산가옥)를 취득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명칭이 혼동되니 기존의 총회측은 사상교회의 명칭을 사용하고, 고신측은 사상중앙교회로 칭하게 된다.
(이 후 1970년대 이재수장로가 별도로 개척 한 사상중앙교회는 이전하여 한남교회로 개명)

본 자료는 1950년대 초로 추정되는 시장통의 사상중앙교회 건물이며 당시 유년주일학교 교사들의 모습이다.
좌측부터 방임영.방재영(방문수장로 자녀) 김인숙(초대교인 김석현 님의 자녀), 구근숙(설립자 김용수님의 손부/구종철전도사 차녀), 외

기도의 어머니들(1960년대)

한상동목사 와 김봉조장로(1960년 9월 9일)

사상교회 유치원 졸업사진(1949년)

최대연전도사 고려신학교 졸업기념(1958년)

설립교인 김용수의 장손 김봉조의 장로장립(1954년 범천교회 추정)

사상교회 등반예배기념(1952년 4월 27일)

사상중앙교회(고려파/적산건물)를 배경으로 교사들

주일학교 교사들(1950년대 초)

일제의 소개령으로 인한 청년들의 양산 집단농장 이주(1943~44년)

사상 유년주일학교 졸업장(1950년 6월 4일)

설립자 김용수부인 장례사진(1938년 12월 17일)

사상교회 야외예배 기념(1949년 5월 1일)